“소련 굶어죽을 상황 아니다”/서방측 구호손길에 일부선 부정적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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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증산불구 유통구조 잘못 등이 큰 원인/노동기율확립·정책강화로 극복 가능
지금 전세계는 과연 소련이 올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소련의 식량위기에 대한 근심어린 걱정들을 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들,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소련을 돕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미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는 이들 서방국가에서 공급한 원조물자들이 도착되어 배분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을 돕자」「고르바초프를 돕자」는 캠페인이 확산될수록 부정적인 시각도 커져가고 있다.
소련이 과연 지금 굶어죽을 상황이냐는 의문들이 우선 제기되고 있다.
식량문제 전문가들은 금년 소련의 작황이 최소한 작년에 비해 10% 정도 증가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련 자체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소련의 유통구조가 엉망인데다가 각 지방공화국 생산농장이나 계약공급자들이 연방정부와 대도시에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않아 식량위기가 가속화되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8일자 프라우다지의 보도에 따르면 모스크바역 구내 철길주변에는 지난 7월이래 하역을 기다리며 썩어가는 화물객차들이 널려있다고 한다.
또한 소련의 각종통계는 금년도 소련 농산물의 60%가 유통기간중 썩고 멍들어 버려진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소련은 농업이 큰 골칫거리였으며 70년대 이후에는 단 한번도 만족할만한 농산물을 수확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 식량기근을 몰고온 여건들이 왜 유독 금년에 더욱 악화되었는가.
몇몇 분석들은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집단이 조직적으로 태업을 시작한데다 노동기율등이 전환기의 틈을 타 크게 해이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점도 새삼스럽게 발생한 일이 아니다.
이미 금년의 경우에도 가을 이전부터 농작물 수확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았으며 9월엔 예년보다 16% 이상이나 많은 가축들이 도살됐었다.
소·돼지 등 가축들이 유난히 많이 도살된 이유는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고기가격을 인상한데도 이유가 있었고 사영시장의 비싼가격을 무릅쓰더라도 양질의 고기를 사겠다는 소련 시민들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강력한 지도력을 상실한 채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기 보다는 각 지방공화국과 농민들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쓰는 무기력함을 노출시켰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더욱 기승을 부려갔다.
도시의 식량난이 가중되자 급진파들은 고르바초프에게 더욱 더 완전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실시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임시방편으로 군의 막대한 비축식량을 방출하라고 촉구했다.
심각해지는 식량난과 관련해 보수파들은 쓰러져가는 노동기율을 바로잡기 위한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해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라고 촉구했다.
보수파들은 강력한 힘과 행정력을 동원해 수송문제등을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한편 급진파들은 보다 더 철저한 민주주의적 개혁정책을 실시하여 조속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통해 극복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자신에게 비상대권을 포함한 권력의 집중을 성취하고 있으면서도 식량난 해결을 위해 서방에 구호의 손을 벌리는 방법을 채택하는 의외성을 보였다.
페레스트로이카정책 5년동안 일관된 국내정책을 갖지 못한 고르바초프가 국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택한 길이 「소련은 거지나라」라는 인상을 주는 정책이라는데 대해 급진파·보수파 모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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