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뚫린 「지자제 터널」/여야 힘겨루다 마침내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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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30년 만의 실현」 명분에 3대 쟁점 양보/김 총재 대선 때 활용속셈… 여도 결과 낙관
국회를 파행상태로 끌어왔던 지자제협상이 평민당의 후퇴로 타결됐다.
평민당은 11일 당무회의를 열고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선거운동방법 등 지자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던 3개 쟁점에서 모두 양보키로 했다.
이로써 정기국회는 회기를 고작 1주일 앞두고 정상화돼 뒤늦게 예산심의에 착수하게 됐다.
평민당이 완강하게 고집하던 선거구제나 옥외집회 등 선거운동 방법을 포기한 데는 촉박한 국회일정,여론의 압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30년 만의 지자제실시」라는 큰 성과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총재도 11일 기자회견에서 국회정상화 방침을 밝히면서 「지자제를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다.
평민당은 정기국회에 복귀할 때 지방의회 선거는 물론 그 동안 여당이 기피해왔던 지방자치단체선거까지도 모두 받아냈다.
이번 지자제협상 과정을 통해 민자당측으로부터 지방의회선거법과 함께 단체장선거법도 한꺼번에 처리토록 보장받음으로써 사실상 평민당의 목표는 거의 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자당측은 평민당이 지자제선거를 김대중 총재의 대권 재도전 발판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보고 정당의 개입이나 선거운동의 제한같은 것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단합대회 등 정당집회의 형식을 통한 선거운동을 받아냄으로써 김대중 총재의 선거운동 지원이 가능하도록 보장받았다.
평민당측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지계층을 확대하고 선거자금도 충당하는 수단까지 확보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여론의 비판에 힘입은 민자당측의 완강한 거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기반의 제한성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평민당측이 희망했던 중선거구제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같은 막바지의 쟁점들은 평민당측으로서는 지자제협상 자체를 결렬시킬 만큼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평민당은 이번 회기중 지자제선거법을 모두 처리,내년 상반기 지방의회선거,92년 상반기 자치단체장선거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기 때문이다.
평민당측이 이 정도 선에서 지자제협상을 종결시키기로 한 것은 현 수준에서도 김대중 총재의 대권도전을 위한 발판이 충분히 마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민당측은 광역의회나 자치단체장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하고 정당단합대회를 허용함으로써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호남당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사실상 전국유세에 나서 지자제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총재는 11월23일 국회에서 행한 정당대표 연설에서 『지자제를 하지 않고서는 야당으로서의 뿌리를 내릴 수 없고 92년 총선이나 대선(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자제를 강력히 추진해온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지자제선거를 최대한 활용할 작정이다.
평민당측은 지방의회선거에서 소선거구제를 택함으로써 지역당적인 성격이 뚜렷이 부각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체장선거가 실시되면 당의 하부조직을 상당히 튼튼히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서울 등 대도시의 장악을 넘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평민당측 생각에 대해 민자당도 나름대로의 대차대조표를 통해 선거결과를 유리하게 보고 있다.
우선 소선거구제를 관철시킴으로써 평민당의 지역적 한계를 분명히 노출시킨다는 것이며 광범한 인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경우 평민당을 지방의회선거나 단체장선거에서 모두 압도할 수 있다는 계산을 마쳤다.
협상과정에서 민자당측이 정당의 지원폭을 너무 넓혀 놓은 데 대해 정부측으로서는 큰 불만을 보이고 있고 그 때문에 기초자치단체의 정당단합대회 등 일부문제에 대해 뒤늦게 이의를 달고 있다.
민자당·평민당이 지자제 선거법을 그들 나름의 당략과 이해에 따라 조정하긴 했지만 일단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정당 조직에 큰 변화가 올 것이 분명하고 공무원 체계도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여 그 변화가 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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