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협상 일단 거부 쪽으로 가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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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27일 최고위원회의서 결론 내겠다"며 최종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강재섭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 협의내용을 전한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협상할 수도 있다'는 온건론부터 '협상 자체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강경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있어 하루 더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 분위기는 '사실상 거부' 쪽에 가깝다. 박 실장은 "온건론과 강경론이 당내에 있지만 사실상 거절이란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며 "전체적으론 부정적 분위기"라고 했다. 소위 온건파에 속하는 인사들도 청와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협상회의 수용의 전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미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카드 포기'는 물론 ▶정연주 KBS 사장 임명▶이재정 통일장관 후보자 내정을 철회하라는 조건이다.

박 실장은 '전효숙 헌재소장 카드를 포기하면 성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온건파조차 전 후보자는 어차피 '사석'(바둑 용어로 포기한 바둑돌을 뜻함)으로 보고 있다"며 "회담 성사의 전제조건이 아니다"고 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전 후보자 임명 문제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며 "청와대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먼저 문제를 정리하고 난 뒤 협상을 할지 말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현재의 막힌 정국을 타결하기 위한 대통령의 진정 어린 제안을 환영한다"며 "한나라당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 민주.민노당 "뒤통수 맞았다"=청와대의 정치협상회의 제안에서 소외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제2의 연정 제의'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두 당은 전 헌재소장 후보자 문제와 관련해 "절차적 하자가 치유되면 정상적으로 투표하자"는 '우호적'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청와대가 한나라당만을 파트너로 회의를 제안하자 뒤통수 맞았다는 분위기다. "범국민 차원에서 정국을 풀겠다는 게 아니라 한나라당에 제2의 연정을 제안한 것"(민주당 이상열 대변인), "거대 양당의 조정만으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건 '밀거래 정치협상'이자 '변형된 대연정'의 실현을 목표로 한 철 지난 유행가의 반복"(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이란 반응이 나왔다.

서승욱.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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