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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미국은 왜 보잉 격납고에서 기자회견을 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미국 항공사 보잉의 창고에는 비행기 290여 대가 묶여 있다. 고객에 인도되지 않은 신제품이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40대가 중국 주문량이다. 중국은 2019년 ‘보잉747맥스’ 기종의 연속 추락 사건을 이유로 보잉기 인도를 전면 중단했다. 마침 불거진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재고 사태’는 더 길어지고 있다.

지난주 중국을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마무리 기자회견장으로 상하이의 보잉 격납고를 선택했다. ‘보잉기 재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기대했던 보잉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양국 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달 30일 상하이의 보잉 격납고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상하이의 보잉 격납고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AP=연합뉴스]

보잉은 급하다. 지난해 말 현재 보잉이 갖고있는 중국 주문량은 116대. 이에 반해 에어버스는 565대를 쥐고 있다. 에어버스는 지난 4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140대 주문을 더 받아갔다. 보잉으로서는 2041년까지 약 8485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매머드급 시장을 경쟁사에 다 내줘야 할 판이다.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중국에도 약점은 있다. 중국의 꿈은 세계 항공기 시장을 ‘ABC 구도’로 재편하는 것이다. 에어버스(Airbus)와 보잉(Boeing), 그리고 자국 항공기 제작 회사인 코맥(Comac,中國商飛)이 시장을 나눠 먹는 구도다. 이를 위해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게 바로 코맥의 민간항공기 C919 개발이다. 이미 시험 비행을 끝냈고, 실제 운항을 앞두고 있다.

C919는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날지 못한다. 엔진 등 핵심 부품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맥은 C919 엔진을 샤프란이라는 프랑스 회사에서 들여온다. 미국 GE가 기술력을 쥐고 있는 회사다. 이밖에 비행통제시스템, 비행기록장치 등도 미국 기술에 기대야 한다. 보잉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중국은 수출 감소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시장이 필요하다. 다 만든 비행기를 계속 보잉 창고에 넣어두고는 협상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의 보잉기 인도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러몬도 장관은 격납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미국에도, 중국에도, 그리고 세계에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거듭 강조했다. 미·중 간 펼쳐질 신냉전이 ‘너 죽고 나 살기 식’ 미·소 냉전과는 다르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다. 항공기 업계의 미·중 역학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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