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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태고의 온천을 재현한 테르메 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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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스위스의 발스 협곡은 철도도 없는 첩첩 산골이다. 예전부터 온천이 솟아 1960년대 독일인 사업가가 호텔 리조트를 세웠으나 운영난에 빠졌고 마을 주민들이 인수하기에 이른다. 온천의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이 찾아낸 건축가는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였다. 그는 기존 시설들 중심에 특별한 온천장 건물을 세워 새로운 리조트로 바꾸었다. 1996년 개장한 수용인원 140명의 이 온천은 연간 14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 명소가 되었고, 춤토르의 ‘테르메 발스’는 건축적 성지가 되었다.

경사지에 위치한 온천장은 반쯤 지하에 묻혀 전면만 드러난다. 벽과 바닥의 주재료는 얇게 켠 편마암으로 이 지역의 전통 민가인 샬레(chalet)에 흔히 쓰던 재료다. 건물 전면에 뚫린 개구부를 통해 험준한 바위산과 초원에 흩어진 산장들의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재료부터 풍경까지 지형과 건축이 일체가 되었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온천장 내부는 15개의 독립된 블록들이 여기저기 놓이고 그들 중심에 실내외 두 개의 대욕장이 위치했다. 블록들은 탈의, 샤워, 휴식, 그리고 일인용 욕장 등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온천장은 작은 도시와 같은 구성으로, 블록들이 건물이라면 대욕장은 도시의 광장이다. 블록들 사이의 천장에는 폭 6㎝의 가는 홈들이 줄지어 있어 자연광을 내부로 확산시킨다.

내부의 벽들도 모두 예의 편마암 적층이고, 여기에 담긴 온천수 증기에 천장 홈에서 퍼진 빛들이 어른거린다. 춤토르의 의도대로 ‘바위 속에서 온천수가 솟는 태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거의 종교적 공간에 가까운 온천 체험은 곧 세례와 치유의 경험이 된다. 리조트 안에 최근 지은 ‘건축가의 집’의 객실들은 춤토르와 구마 겐코, 모포시스,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스위스 산골 태생의 춤토르는 고향과 그 인근 지역에 소수의 소규모 건축만 남겼으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가다. 그의 모든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테르메 발스는 그나마 대형 작품에 속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