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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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우리 조상들은 젊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앵두 빛 입술에 도화 빛 뺨으로 형용해 왔고 이 붉은 빛을 부각시키는 화장품으로 연지를 썼다.
입술과 뺨에 바르는 연지를 이마에 바르면 곤지가 된다.
붉은 빛 연지곤지는 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젊음과 부끄러움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혼례식 때 신부는 노랑 저고리·다홍치마 위에 활옷을 입고족두리를 쓴다.
붉은 비단에 모란꽃 수를 놓은 활옷을 입은 신부는 얼굴을 흰 폐백수건으로 가리고 수줍음을 탄다.
초례청에서 고개를 숙이고 배례할 때 드러나는 얼굴의 다소곳한 표정. 그 뺨과 이마의 한가운데에 붉은 원을 그려 넣은 화장이 연지와 곤지다.
연지곤지 찍고 시집간다는 말이 있듯 연지곤지의 붉은 원은 혼례를 치르는 처녀가 하는 신부화장의 대명사다.
우리의 옛 처녀들은 15∼16세가 되면 얼굴이 도화 빛을 띠어 가장 아름다웠고 이 젊음을 강조해 주는 것이 연지의 붉은빛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과부와 홀아비가 결혼할 때는 연지곤지를 찍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연지곤지는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초혼을 뜻한다고 하겠다.
볼과 입술을 붉은 색조로 칠하는 연지학장의 최초 기록은 기원전 1150년께 중국 은의 주왕 때에 나오므로 약 3천년의 역사를 지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연지화장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때에도 연지화장이 있었다고 한다.
또 서기 5∼6세기께에 축조된 수산리 고구려 벽화와 쌍영총 벽화 인물상에 연지치레 모습이 또렷하므로 연지는 우리나라에서도 l천5백∼2천년의 역사를 지닌다고 하겠다.
우리 전래 풍습에 단오 때 비녀 끝에 연지를 발라 재액을 물리치거나 일부 산간 지방에서 전염병이 돌 때 예방수단으로 이마에 연지를 칠하거나 붉은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예가 있었다.
이에 따라 연지의 기원을 재액이나 나쁜 귀신이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주색금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연지의 재료는 주사라는 광물질을 가루를 내거나 홍화(잇꽃)꽃잎을 찧은 가루를 썼고 주사는 진홍, 홍화는 좀더 엷은 붉은 색을 낸다.
홍화는 지금도 연지의 원료로 쓰인다.<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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