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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우의 야구화(話)] 오심도 경기의 일부? 비디오판독 시대엔 헛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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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심판과 스트라이크-볼 판정 문제로 거친 언쟁을 벌이는 미국프로야구 워싱턴 내셔널스의 데이브 마르티네스 감독(오른쪽). [AP=연합뉴스]

심판과 스트라이크-볼 판정 문제로 거친 언쟁을 벌이는 미국프로야구 워싱턴 내셔널스의 데이브 마르티네스 감독(오른쪽). [AP=연합뉴스]

야구란 종목이 만들어진 이래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건 스트라이크-볼 판정일 것이다. 선수, 코칭스태프, 팬까지 모든 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게 스트라이크-볼 판정이다. 당연하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속 150㎞를 넘나들고 상하좌우로 요동치는 투구를 100% 정확하게 판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메이저리그(MLB)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2001년 도입된 퀘스텍이 시발점이다. 팬에게 정보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심판 고과 평가에 사용했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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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엔 ‘PITCH f/x’란 투구 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사일 추적 장치와 같은 원리인데 투구 궤적을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구단은 물론 팬들에게도 모든 경기, 모든 투구의 판정을 공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08년 측정한 볼 판정 정확도는 겨우 81.3%였다. 2017년엔 카메라 기술까지 결합된 스탯 캐스트가 도입돼 더 정확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최근엔 더욱 발전한 ABS(Automated ball-strike system)가 등장했다. 소니가 만든 ‘호크아이’라는 추적 시스템이 기반이다. 스포츠 팬에게 호크아이는 이미 익숙하다. 테니스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고, 국제축구연맹과 국제배구연맹도 쓰고 있다.

MLB 사무국은 올 시즌 트리플A 전 구장(30개)에 이 시스템을 적용 중이다. ABS 시스템은 구속은 물론이고 투구의 회전량, 상하의 변화 수치까지 추적한다. 당연히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가능하다. 효과는 확실했다. 투구 추적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2022년 판정 정확도는 92.4%까지 올라갔다. 기계를 통한 감시가 판정의 정확도를 끌어올렸다. 100개의 투구 중 8개가 틀렸으니 여기에 만족해야 할까.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코스를 분석해 보면 명확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공의 정확도는 99.3~99.5%다. 하지만 ‘존에 걸치는 공’에 대한 판정은 여전히 부정확하다. 2008년 투수가 보더 라인(스트라이크 존 경계선)에 던진 공의 판정 정확도는 66.2%였다. 지난해엔 80.8%로 올라갔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약 38%가 보더 라인을 향한다. 보통 한 경기 양팀 투수 투구수를 합치면 300개 정도다. 그러니까 한 경기에 100개 이상의 공이 이 코스를 향하고, 그중 20개 정도는 볼이 스트라이크로, 스트라이크가 볼로 둔갑한다는 이야기다. MLB 사무국은 지난 15년간의 결과를 보며 정확도를 더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프로야구 중계 화면에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을 표시한다. 문제는 이 그래픽이 높낮이와 좌우 폭만 보여주는 2차원으로 구현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ABS는 12대의 카메라를 통해 가상의 3차원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다. 이 구역을 통과했는지 확인되면, 곧바로 이어피스를 통해 심판에게 전달한다. 처음 도입됐을 땐 낮은 코스 판정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불만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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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명제가 통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 덕분이다. 파울/페어, 아웃/세이프 등 많은 부분에서 판정의 정확도가 올라갔다. 사실 처음엔 심판들의 반응이 차가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팬들도 판독을 통해 심판 판정을 번복하는 상황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스포츠의 기본 가치는 공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만큼 공정한 분야도 보기 힘들다. 역설적이게도 야구가 만들어진 이래 스트라이크 존은 항상 공정하지 않았다. 야구를 좀 더 ‘페어한 게임’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로봇 심판의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포수의 프레이밍(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받게 하는 포구 능력)이란 고급 기술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건 아쉽지만.

※ ‘송재우의 야구화(話)’ 전체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2011 

송재우 야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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