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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와 광복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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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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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물리학자를 조명한 ‘오펜하이머’가 15일 광복절 개봉한다. ‘인터스텔라’(2014)로 천만 흥행을 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다. 북미에선 지난달 21일 ‘바비’와 나란히 개봉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전 세계 최초로 종종 틀어주는 한국에서 왜 이 영화만 광복절에 맞춰 뒤늦게 왔을까.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 측은 “한국 대작들의 개봉 일정을 고려한 결정”이라 했지만, 광복절 특수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오펜하이머’의 실제 모델인 줄리어스 오펜하이머(1904~1967)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패전을 앞당긴 원폭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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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45년 8월 6, 9일 두 차례에 걸쳐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후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수십만이 사망하고 후유증이 컸던 핵무기를 향한 비판도 거셌다. ‘오펜하이머’는 이런 피해 묘사보다 통제 불능의 판도라 상자를 연 오펜하이머의 고뇌에 집중한다. 앞서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패러디가 원폭을 희화화했다는 지적이 나온 일본에서 ‘오펜하이머’ 개봉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배경이다.

여름 시장 막바지인 광복절에는 통상 역사물이 강세였다. 친일파 암살작전을 그린 ‘암살’(2015)도 광복절 당일 1000만을 달성했다. 부당한 외세에 고통받은 한국 현대사를 되새기는 의미가 있다. 일본의 원폭 피해는 한국의 광복을 당겼지만, 당시 피폭으로 고통받은 이들 중엔 현지 조선인이 일본인 다음으로 많았다. 전쟁의 고통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오펜하이머’의 광복절 개봉을 둘러싼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