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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설계한 놈들이 직접 조립해 봐라" 도요타 이길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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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요타 제친 비결 ‘품질 뚝심’

현대차 연구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기름밥’을 먹어본 재벌 2세입니다. 1970년 현대차 첫 서비스센터에서 부품과장으로 일을 배우며 직접 미션도 뜯어봤지요. 그래서 그의 ‘품질회의’는 부품까지 콕 집어가며 따지는 야전회의였습니다. 정몽구의 ‘품질 뚝심’은 도요타를 추월하는 현대차 정신의 주력 엔진이 됐습니다.

정몽구

정몽구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

2004년 5월 뉴EF 쏘나타가 미국의 품질조사기관 JD파워의 품질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자 미국의 유력 자동차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차 아류’쯤으로 취급받던 현대차에 대한 이례적 평가였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소니를 물리친 것에 비견하며 떠들썩해 했다. 하지만 현대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 공기’는 냉랭했다. 정몽구(현 명예회장) 현대차그룹 회장이 그해 6월 ‘위기경영’을 선포하면서다. 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아니, 다그침에 가까웠다. “잘나갈 때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도요타를 따라잡자. 우선 도요타를 배워라.”

정 명예회장의 지시는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실행됐다. 현대차 임원들은 도요타를 분석하는 세미나, 포럼 등을 사실상 매주 열면서 도요타의 생산·노사·연구개발 등 전 분야를 대상으로 ‘열공’에 돌입했다. 기획총괄본부 산하에서 직접 『도요타의 신성장 전략』을 펴내거나 ‘도요타 웨이’를 분석한 자료가 연구소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공유됐다. 그리고 20년 후인 2023년, 현대차그룹은 실적 면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를 뛰어넘었다. 현대차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6조4667억원으로 도요타(6조2087억원)를 근소하게 앞질렀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중앙일보가 만난 전·현직 현대차그룹 임원들은 이런 ‘압축 성장’을 이뤄낸 정 명예회장의 경영 방식을 ‘품질 뚝심’이라는 네 글자로 설명했다. 1998년 미국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이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면 조종사가 놀라서 귀환을 포기할 것”이라고 비아냥댔던 현대차의 혁신은 월 2회가량 열린 ‘품질 회의’에서 시작됐다. 99년 정 회장이 취임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자리다. 품질 회의에는 부품이나 자동차 실물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 명예회장은 해당 부품을 콕 집어 “왜 이렇게 됐느냐”고 질문했다.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와 미사여구로 포장된 개선 계획, 장밋빛 전망을 뭉뚱그려 나열하거나 ‘우리 측의 잘못은 아니다’고 핑퐁식으로 책임을 미룰 때면 어김없이 “쉽게 설명하란 말이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형근 전 기아차 부회장은 “본인(정몽구 명예회장)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근본을 꿰뚫어 질문하는데 누구도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권문식 전 현대차 부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과 함께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을 방문한 일화를 소개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양산 전에 신차와 똑같은 차량을 30대 만들어서 조립이나 부품의 품질을 완벽하게 점검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정 명예회장이 그걸 보더니 ‘품질이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그럼 우리는 300대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해에 들어간 비용만 8500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뒤 따져보니 효과가 1조5000억원이 나왔어요.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된 것입니다.” 이때 벤츠 출장에 동행했던 또 다른 부사장은 “정몽구 당시 회장께서 ‘설계한 놈들이 직접 조립해 봐라. 도면만 그려놓고 끝내지 말라’고 지시하셨다”고 회고했다.

전기자동차로 승기를 잡은 현대차는 도요타를 완전히 넘어설 수 있을까. 일본 자동차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던 고바야시 히데오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2011년 펴낸 『현대가 도요타를 이기는 날』에서 이렇게 예견했다. “현대차는 도요타를 포함한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현대적’ 제조 방식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만만치 않은 상대로 성장했다.” 현대차 전직 고위 관계자의 얘기는 이와는 결이 다르다. “아직도 도요타는 높은 산입니다. 예컨대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관련 특허만 100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미래 기술 덩어리입니다. 도요타뿐 아니라 현대차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습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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