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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寧媚於竈(영미어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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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공자님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공자님 당시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한때 유행했던 ‘핵관(핵심관계자)’이란 말과 비슷한 의미의 ‘부엌신’이란 말이 있었으니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집안에 성주님·조왕신·삼신할미·터줏대감·우물신 등 다양한 신(神)을 모셔왔다. 공자님 당시 중국도 집안의 다섯 곳에 제사지내는 습속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은 ‘아랫목신(奧神)’이었다. 그런데 당시 민간에는 “아랫목 신에게 아첨하느니 차라리 부엌신(竈神)에게 아첨하는 게 낫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힘없는 임금인 영공(靈公)을 주신(主神)인 아랫목신에, 실세인 권신 왕손가(王孫賈)나 왕비 남자(南子)를 부엌신에 비유하여 풍자한 것이다. 왕손가는 부엌신에게 비유된 자신이 왕보다 실세임을 과시하기 위해 당시의 유행어인 “아랫목 신에게 아첨하느니…”라는 말을 들먹이며 공자의 반응을 보고자 한 것이다.

寧: 차라리 녕, 媚: 아첨할 미, 竈: 부엌 조. 차라리 부엌 신에게 아첨하는 게 낫다니.... 32x73 ㎝.

寧: 차라리 녕, 媚: 아첨할 미, 竈: 부엌 조. 차라리 부엌 신에게 아첨하는 게 낫다니.... 32x73 ㎝.

이에, 공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不然)”라며 ‘아랫목신에게도 부엌신에게도 아첨을 해서는 다 안 된다’(媚於奧, 媚于竈, 都非也·작품)는 뜻을 담은 답을 했다. 공자는 왕손가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일까?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