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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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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잔혹하고 매서운 추위가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이던 2018년 11월 미국 동부의 기록적인 한파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지구 온난화가 허구라는 주장을 하려던 트럼프였지만, “기후(지구 온난화)와 날씨(한파)를 혼동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았다.

날씨(weather)는 ‘특정 지역에서 지구 대기의 변화에 의한 결과’를 뜻한다. 반면 기후(climate)는 ‘특정 지역에서 오랜 기간 나타나는 날씨의 평균 상태’를 가리킨다. 영국 기상청이 2015년 지구 온도가 산업화시대(1850~1900년) 평균치보다 1.02도 상승했다고 분석했으니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봐야 한다. 같은 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바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이다.

트럼프의 기후변화에 대한 불신은 행정부 일 처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취임 5개월만인 2017년 7월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직원들에게 ‘기후변화’ 대신 ‘극단적 날씨(weather extremes)’라는 용어를 사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최고, 최저, 최대 같은 단어를 빼고 날씨를 전할 수 없는 세상을 예측한 것 같아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지난 11일 서울 동남부 일부에 ‘극한호우’ 긴급 재난문자가 처음 발송됐다. 지난해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를 계기로 올해 6월 수도권을 대상으로 시범 도입됐는데 바로 사례가 나왔다. 호우 경보 기준(3시간 강우량 90㎜)을 충족하면서 시간당 50㎜ 이상의 극한호우가 내리면 재난문자가 발송된다. 외국에선 극한호우(extreme rainfall)의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서 대기가 과거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게 되고 이로 인해 더한 강도의 비가 오랫동안 쏟아진다는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사계절도 예전 같지 않다. 찌는 듯한 더위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갈수록 극성을 부린다. 봄·가을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계절의 시계인 24절기도 뒤죽박죽이다. 올여름 장마는 수해만 남긴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까지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