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신문 만들며 나치의 두려움도 떨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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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클레피, 희망의 기록

캐시 케이서 지음, 최재봉 옮김, 푸르메

219쪽, 9000원, 중학생 이상

안네 프랑크가 나치 치하의 숨 막히는 공포를 일기 쓰기로 견뎌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체코 아이들은 신문 만들기로 탈출구를 찾는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여름, 체코 부데요비체시 유대인 집단거주지에 있는 수영장이 배경이다. 글쓰기에 재능 있는 소년 루다는 "에너지와 창조력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찾다가 신문을 만들게 된다.

신문이래봤자 타자기로 친 내용에 약간의 사진과 그림을 곁들인 것. 제호인 '클레피'는 '뒷말'을 뜻하는 체코어다. 제목답게 1호에 실린 내용도 시시콜콜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남자아이가 실수로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면 비명을 지르는 여자아이들과 마주칠 것이다. 거꾸로 여자아이가 실수를 해서 남자 탈의실에 들어가면 환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신문이 수영장에서 함께 놀던 또래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면서 신문 만들기는 좀더 심각하고 진지해진다. 첫 호에서 세 쪽 남짓이었던 '클레피'는 1년간 22호를 발행하면서 30쪽이 넘는 분량이 된다. 아이들은 이 지하신문을 벗삼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유대인 핍박과 죽음의 공포 등 살벌한 현실을 이겨내려 한다. 지하신문은 곧 아이들의 표현 수단뿐 아니라 유대인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단단한 매체가 된다. 아이들이 더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신문은 그 자체가 저항의 한 형태야. 우리가 신문을 발행하고 돌려 읽힌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 등 가슴 찡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유대인 학살의 틈바구니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으로 전해지며 남은 '클레피'는 현재 프라하 유대인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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