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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북교류 어제와 오늘|통일 축구로 한 핏줄 확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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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통일조국의 미래를 함께 짊어지고 나갈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평양 능라도와 서울 잠실벌에서 한마음이 되어 힘차게 달렸던 통일축구대회는 남북체육교류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민족 분단사에 있어 뚜렷한 흔적을 남길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난달 28일 국회체육부감사에 앞서 행한 정동성 체육부장관의 남북통일축구대회와 관련한 업무보고내용중 일부분이다.
정 장관은 「통일축구」가 민족의 화해에 기여하고 조국통일로 향하는 대장정의 출발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축구대회는 한국스포츠사의 일대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경평축구」의 맥을 이어 분단 후 처음 교류의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통일축구는 전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7천만겨레의 통일염원을 담은 통일축구는 성사→무산→개최의 우여곡절 끝에 북경아시안게임 폐막 다음날인 10월9일 한국축구대표선수단 76명이 북경 발 평양행 조선 민항 전세기에 몸을 싣게됨으로써 시작됐다.
통일축구개최에 대한 남북테이블은 북경아시안게임 기간 중에 마련됐다. 선수단 격려 차 북경을 찾은 정 장관은 김유순 북한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통일축구개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세 차례의 비밀접촉을 통해 9월23일 비로소 남북축구교류의 원칙적인 합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통일축구 논의는 한층 활기를 띠게 됐으며 북경의 장충식 한국선수단장과 김형진 북한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은 서너 차례 실무협의를 갖고 경기일정·선수단규모 등을 구체화 할 수 있었다.
사실 통일축구논의가 첫 거론되기는 지난7월 북경에서 열린 제1회 다이너스티컵 국제축구대회 때였다.
당시 이 대회를 참관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은 강득춘 북한단장과 만나 남북축구교류를 공식제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었다. 그후 북한은 9월17일 남북 조절위를 통해 남북축구교류에 원칙적으로 합의한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내옴으로써 통일축구논의가 본격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남북을 오가며 치러진 통일축구는 승패를 떠나 분단45년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한 획기적인 스포츠 이벤트였다.
승부를 초월한 화합의 큰물결이 서울·평양 할 것 없이 전국을 휩쓸었고 때맞춰 열린 남북고위급회담·통일음악제 등과 함께 통일을 염원하는 겨레에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겨 줬다. 통일축구 열기는 곧바로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로 이어졌다. 남과 북의 청소년대표들이 나란히 결승에 진출, 사상 처음으로 세계청소년축구대회(91년6월·스페인)에 동반 출전하는 쾌거를 이룩했던 것. 분단의 아픔을 뛰어 넘어 이룬 값진 결실이었다.
그러나 통일축구는 쌍방의 이해가 엇갈린 채 단발용으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열린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1차 남북체육회담에서 한국은 교류와 단일팀 구성을 병행하자고 한 반면 북한은 선 단일 팀 구성안을 각각 들고 나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이미 합의한바 있는 통일축구정례화도 수정제의를 통해 난색을 표시함으로써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통일축구가 국내체육계에 던진 파문은 엄청 나다. 이를 계기로 마라톤·조정·탁구·배드민턴·사이클 등은 이미 종목별 남북교류를 추진하고 있고 이에 편승, 일부 경기단체에서도 서둘러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내체육계의 시각은 그리 밝은 편이 못된다. 올 통일축구 추진과정에서 보듯 북한은 순수스포츠교류가 아닌 정치선전도구로 이용하는 등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을 보였다.
또 북한측에 질질 끌려 다니는 식의 한국 측 자세에는 문제가 많았다.
통일축구실현을 위한 남북회담은 북경·평양·서울에서까지 굴종 적인 양상으로 일관해 왔던 게 사실이다.
통일축구를 마치고 난 후 「한건 주의」에 들떠 이를 주도한 체육부에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
실제로 정 장관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체육단체간의 의견수렴 과정을 무시한 채 독단으로 결행하는 파행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정 장관은 한건 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성사를 위해 지나치게 서두르면서 시행착오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체육단체내부의 알력이 심화, 급기야는 김종렬 대한체육회장이 당초 단장으로 예정돼있던 장충식 북경선수단장(한국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을 소환하는 해프닝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남북체육교류는 서로간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게 선결과제며 이를 토대로 진정한 동반자로 인식, 차근차근 매듭을 풀어나가는 자세 전환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물꼬를 텄지만 아직 둑을 허물기엔 이르다』는 게 남북교류에 대한 국내체육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전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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