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 의학처방집 '식료찬요'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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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책 이름만 전하던 조선 초기 의학 처방집 '식료찬요(食療纂要)'(세조 6년.1460년)가 발견됐다. 이 책은 조선 세종대에서 세조대에 걸쳐 활약한 의관이었던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 것으로 임진왜란 전에 발간된 희귀 고문서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식료찬요'는 책 이름 그대로 '식료(食療)'에 관한 주요한 처방의 모음집이다. '식료'는 '식치(食治)'라고도 하며, 음식을 통한 질병의 치료를 지칭하는 말이다.

'식료찬요'는 바로 이러한 '식치'를 다룬 조선 초기의 중요한 처방집인데 본래 김희태(한집 디자인 대표)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신승운(성균관대 문헌정보학) 교수는 이 책과 함께 연구 논문을 오는 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 아단문고에서 열리는 '한국서지학회' 정기 세미나에서 처음 발표한다.

'식료찬요'에 대한 기록은 조선 최고의 문헌학자라 할 수 있는 경와(敬窩) 김휴(金烋.1597~1638)의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간 이름만 전할 뿐 책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저자 전순의는 조선 세종.문종.세조 3대에 걸쳐 전의감(典醫監) 의관(醫官)을 역임했다. 조선조의 대표적인 의서(醫書)중 하나인 '의방유취(醫方類聚)'(1445년)의 편찬에 참여한 저명한 학의(學醫)다. 그러나 그의 출신이나 가계는 물론 생몰연도조차 불확실한 상태여서 이번 발굴의 의미를 더한다는 평이다.

신교수는 "김희태씨 소장본을 입수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안동에 사는 김영탁씨의 소장본을 추가로 입수, 참고했다"고 말했다. 김영탁씨 소장본은 김희태씨 소장본보다 후대에 발간됐지만 책의 서문이 붙어 있는 게 특징이다. 신교수는 "서문을 보면 당시 한글로 쓰던 처방을 한문으로 번역해 실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책을 의학 처방집을 넘어 조선 초기 국어학 자료로도 읽히게 한다"면서 "앞으로 의학서와 국어학 자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더욱 깊은 연구가 요청된다"고 밝혔다.

서문을 보면 먼저 식료의 중요성을 지적한 다음 편찬 의도를 밝히고 있다. 병이 들었을 때 황급한 상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상용(常用)하는 식치에 관한 쉬운 처방을 옛 책에서 뽑아 책을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받아보고 세조는 '식료찬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순의에게 서문을 쓰도록 지시했다.

이에 덧붙여 각 처방에 보이는 곡물과 육류[穀肉], 그리고 채소와 과실[菜果]의 이름[物名]이 상용하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명칭이 너무 복잡해 오해하기 쉬우니 물명(物名) 아래에 간혹 한글[正音]을 달아주어 사람들이 보면 쉽게 알고 쓰는 데 의심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박석준(동의과학연구소) 소장과 김남일(경희대 한의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민간에서 손쉽게 약을 구해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로 '의방유취'같은 책의 편찬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의 편찬에 참고한 서적도 서문에 나온다.'식의심감(食醫心鑑)''식료본초(食療本草)''보궐식료(補闕食療)''대전본초(大全本草)' 등에 보이는 손쉬운 처방을 가려 뽑아 45개 항목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식의심감'(3권)은 당나라 구은(咎殷)이 편찬한 의서로서 오래 전에 일실(逸失)된 책이다.

'식료본초'(6권)도 당나라 맹선(孟詵)의 저서로 역시 전하지 않는다. '보궐식료'는 맹선의 '식료본초'에 빠진 89종을 보태어 만든 책으로 당나라 장정(張鼎)의 저서이나 이 역시 오래 전에 없어진 책이다.

배영대 기자

*** 바로잡습니다

11월 4일자 25면 '조선초 의학 처방집 '식료찬요'발견'기사 중 제목과 사진 설명에 나간 식료찬요의 한자 '食僚纂要'를 '食療纂要'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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