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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던 20대 마지막 말 “버스 물 찬다, 창문 깨고 탈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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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진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제방 관리와 차량 통제 미흡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충북 청주 일원에는 지난 14일부터 400㎜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던 중 15일 오전 8시45분쯤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왕복 4차로)가 침수됐다. 청주 옥산~오송·세종 연결도로에 위치한 이 지하차도는 길이 430m, 높이 4.5m다. 앞서 오전 8시40분쯤 지하차도에서 300여m 떨어진 미호강의 임시제방이 터졌고, 강물이 지하차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하차도에는 3분도 안 돼 물이 가득 찼다.

지하차도 배수펌프 있었지만 작동 안돼

경찰 추정 차량 15대(시내버스 1대, 트럭 2대, 승용차 12대)가 지하차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침수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16일 오후 9시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9명, 실종 3명(추정), 부상 9명이다. 특히 청주국제공항∼오송역을 운행하는 747번 버스는 침수된 다른 도로를 피해 우회하다가 변을 당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새벽부터 물빼기와 잠수부를 동원한 수색작업을 펼쳤다. 오후 늦게 물은 거의 빠졌지만 쌓인 진흙 탓에 추가 수색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 지휘본부 뒤에 마련된 대기장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실종자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사연이 알려질 때마다 안타까움도 커졌다. 숨진 김모(30)씨는 청주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난 5월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다른 도시로 임용고시를 보러 가는 처남을 기차역까지 차로 태워주다가 변을 당했다. 처남은 헤엄쳐 나왔으나 김씨는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안모(24·여)씨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 위해 오송역행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안씨의 가족은 “먼저 오송역에 가 있던 친구들에게 ‘버스에 물이 찬다. 창문을 깨고 탈출 중’이라고 연락한 게 마지막”이라고 전하며 울음을 삼켰다. 안씨와 같은 버스에 탑승해 출근하던 박모(76·여)·백모(72·여)씨도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아파트 미화원으로 함께 일하던 친구 사이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주6일 근무를 할 만큼 생활력이 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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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배경과 책임소재에 대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허술하게 쌓은 미호강 임시 제방(둑) 붕괴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장찬교(68) 오송읍 궁평1리 전 이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집중호우가 예보됐는데도 예비 둑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침수사고가 난 것 같다”며 “평생 오송에 살면서 미호천(강) 둑이 무너진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사고 발생 1시간 전인 오전 7시40분쯤 미호강에 설치된 가교 2개 사이의 둑을 찾았다고 한다. 유실된 제방 폭은 50~60m 정도인데, 가교 사이 구간이 비스듬한 형태로 원래 제방보다 낮았다는 게 장씨 설명이다. 장씨는 “현장을 찾았을 때 굴삭기 1대로 모래를 긁어모아 임시 둑을 높이고 있었다”며 “현장 감리단장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둑이 버티지 못한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이번 참사는 지하차도 진입을 제때 통제하지 못한 데다 빗물을 밖으로 빼낼 배수펌프가 ‘먹통’이었던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2020년 부산 초량1지하차도 사고와 대전 소정지하차도 사고 등 과거 지하차도 침수사고와 ‘판박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호강 홍수를 관리하는 금강홍수통제소는 15일 오전 4시10분쯤 문자로 홍수경보를 발령했다. 통제소는 미호천교가 계획홍수위인 9.29m(가교 기준)에 도달한 오전 6시31분에는 청주 흥덕구청에 “주민 대피와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흥덕구청 측은 전달받은 내용을 오전 6시39분 청주시청 하천과와 안전정책과에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청주시 관계자는 “해당 도로는 충북도청이 관리하는 곳이라서 시청 소관이 아닌 것으로 봤다”고 해명했다.

충북도 “2~3분 만에 물 차 통제 어려워”

충북도는 도로 관리 주체로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충북도로관리사업소는 사고 지하차도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강종근 충북도 도로과장은 “제일 낮은 곳 침수심에 50㎝까지 물이 차오르면 경찰과 협조해 도로통제에 들어간다”며 “사고 당시 2~3분 만에 물이 차 통제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다”고 말했다.

오송 지하차도에는 분당 물 3t을 퍼낼 수 있는 배수펌프가 4개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배수펌프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반 4대 중 2대는 지하차도 침수 시 가동될 수 있도록 외부로 빼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참사 당시 외부 배전반에도 물이 차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를 대상으로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임시 둑을 왜 쌓았는지, 붕괴할 조짐이 있었는지, 붕괴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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