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태풍 매미 이후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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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태풍은 바닷가에 있는 아이들 학교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담이 무너지고 운동장과 교실까지 물이 차올랐던 학교를 아이들이 청소를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바빠 아이들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학교 담은 무너진 채로지만 아이들 글 읽고 노래하고 재잘대는 소리는 여전합니다.

바닷가 논은 물에 잠기고, 산비탈 밭까지 바닷물이 흩뿌렸습니다. 태풍에 열매는 모두 떨어지고 나뭇잎, 채소잎은 찢겼습니다. 나무들은 꺾이고 부러지고 뿌리 뽑힌 채로 방치되었지요. 그러나 며칠 못 가 낙엽이 물들어야 할 나무가 새싹을 돋아내고 철 잊은 벚꽃이 꽃봉오리를 터뜨렸습니다.

태풍에 놀라 산으로 달아나 며칠을 애먹이던 뒷집 암소는 그새 눈이 예쁜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오래 객지에 나가 있던 자식들도 하나둘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지붕을 다시 씌우고 담을 쌓고 대문을 다는 동안 그간 멀어졌던 부모 자식 사이의 마음까지 고쳤습니다. 치유되지 않는 아픔은 없는 법. 아픔 속에서 희망을 배웁니다.

<'저구마을 편지'의 시인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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