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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한파에 쪼들린 기업들, 예금 빼고 빚내서 버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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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올해 초 수출 부진, 부동산 침체 등으로 경기가 둔화하면서 국내 여유자금이 1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소득은 늘었지만, 불경기에 기업은 예금을 빼거나 빚을 내 버텼고, 정부는 세수 부족에 시달린 탓이다.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여유자금(순자금운용) 규모는 1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5조1000억원) 대비 13조9000억원 감소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2분기(-1조4000억원) 이후 최저 규모다.

순자금운용은 경제활동 주체들이 예금·채권·주식·보험 등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회사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이다. 이 차액이 플러스(+)라면 ‘순운용’을, 마이너스(-)이면 자금이 부족해 ‘순조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비금융법인)은 수출 한파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올해 1분기 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42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35조3000억원) 대비 확대됐다. 우선 예금과 주식 등으로 굴린 돈은 1년 전 82조5000억원에서 -46조200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실적 부진에 자금난까지 겹친 기업들이 예금(-31조2000억원)을 대거 인출하면서다. 둘 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반면 대출이나 채권 발행으로 빌린 돈은 117조8000억원에서 -3조9000억원으로 줄었다. 자금을 조달할 때도 금리가 높은 기업대출을 받기보다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세수 부족에 시달린 정부는 어렵사리 곳간을 메웠다. 정부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23조1000억원으로 1년 전(10조7000억원)의 2배 이상 늘었다.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국세 수입이 111조1000억원에서 87조1000억원으로 크게 줄어서다. 자금조달 규모(74조7000억원) 중 한국은행 대출금이 31조원을 차지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문혜정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정부가 국채 발행을 덜 하는 대신 한은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64조8000억원에서 76조9000억원으로 12조1000억원 늘었다. 부동산 경기 둔화, 주식시장 부진 등으로 갈 곳 잃은 가계 여유자금은 은행 예금에 몰렸다. 가계 금융자산 중 예금 비중은 44.5%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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