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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주범은 '이것'…코로나가 만들어낸 이상한 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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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달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 119구급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지난 달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 119구급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올 들어 경기도 용인 70대 외상환자와 대구 여고생 추락 환자가 구급차에서 숨지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류현호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용인 환자 사건을 보고 많이 놀랐다. 지방보다 의료 인력이 상대적으로 덜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서울·경기까지 그렇게 됐다니"라고 한탄했다. 두 사망 사건의 공통점은 구급대원이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헤맸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왜 이런 후진적인 사망 사건이 잇따르는 걸까. 전국에 크고 작은 응급실이 404개나 있는데 왜 이런 걸까. 중앙일보는 119 구급대원 10명, 응급의료센터장 20명을 인터뷰해 '응급실 뺑뺑이' 원인과 대책을 들었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00:48경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센터 이송 위해 출발하였으나, 중환자실 부족 수용 불가…. 지속하여 병원 선정’

용인 70대 환자의 구급 활동 현황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급대원은 병원 11곳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1시간 흘렀다. 마지막으로 의정부성모병원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가 받겠다고 해서 먼 길을 달리던 도중 환자는 숨졌다. 대구 여학생을 태운 구급차도 병원 8곳에 전화를 돌렸다. 환자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그냥 가면 되지 왜 병원의 허락을 받으려 했을까. 코로나 이전에는 가까운 응급실로 무조건 갔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는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화해 환자의 발열과 호흡기 상태를 설명해야 했다. 병원 내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경기도에서 일하는 한 구급대원(1급 응급구조사)은 "코로나 때 사전 연락을 시작한게 지금은 '수용 허락'이 됐다"고 말한다. 간호사 9년 경력의 30대 구급대원은 "구급차에서 할 수 있는 처치가 한정적인데, 병원이 일단 받아서 응급처치라도 해줘야 하지 않느냐. 사전 허락이 '국룰(국가의 규칙을 의미)'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구급대원 홍모씨는 “병원이 골라 받는 느낌이 100000000000%로 든다”고 말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응급실 문제의 뿌리를 찾아가면 필수의료 붕괴로 연결된다. 응급실의 중증환자는 외상이 많다. 신경외과·흉부외과 등 수술 의사가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서 드러났듯 필수진료 의사가 점점 줄어든다. K대학병원 권역응급센터장은 "배후 진료과 의사들이 떠나고 무너져 있으니 환자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대학병원 센터장은 “배후 진료과가 '빵빵빵빵'(빵빵하게) 있어서 바로 입원하고 바로 수술할 수 있으면 안 받을 응급실이 어디 있겠냐”고 했다. 병원 간 전원이 수월하면 급한 처치만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면 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정태오 전북대병원 센터장은 “어떤 이유든 서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케이스가 많아서 병원 간 전원이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길에서 숨지는 거 막으려면…'전화 허락' 없어야" 

119구급대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119구급대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응급실에서 사망자가 생기면 책임 논란에 휩싸인다. 서울의 한 공공병원 응급센터장은 "무조건 환자를 받아놓았는데 수술이 어렵고 전원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심정지가 오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밤샘 근무도 힘든데, 여러 책임을 지우니 의료진의 불안감이 커진다"고 호소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환자를 진료한 뒤 수술이 안 되는 상황이면 응급실 과장이 수술 가능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린다. 그새 환자가 숨지면 책임이 의사에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현장 전문가들은 "응급실은 나라가 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구급대원의 역량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한 대학병원 응급센터장은 “구급대원의 얘기를 듣고선 우리 병원서 감당하기 힘든 중증일 것 같아서 다른 병원으로 보냈는데, 실제 그 정도로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급대원은 “혼자서 환자 활력 징후 체크, 병력 확인, 응급처치, 인적 사항 확인, 병원 전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벅차다”고 했다. 한철 이대서울병원 권역응급센터장은 "응급환자는 해당 지역에서 해결하는게 맞는다. 그런데 수익이 안 나니 사람을 안 뽑고, 적은 인원으로 끌고 가니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현장 전문가들은 우선 급한 환자는 '전화 허락' 과정을 무시하자고 제안한다. 백진휘 인하대 응급의료센터장은 "당장은 어쩔 수 없이 무조건이라도 받게 해서 응급처치하고 전원이라도 보내는 쪽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에서 숨지는 건 막자는 거다. K대학병원 응급센터장도 "구급대원이 전화로 물어보면 못 받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응급실은 항상 자리가 비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밀고 들어오면 어떡하든 만들어본다(진료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오후 서울소방재난본부 구급대원들이 보는 '119응급의료자원정보' 현황. 사진 제보자 제공

지난달 오후 서울소방재난본부 구급대원들이 보는 '119응급의료자원정보' 현황. 사진 제보자 제공

'실시간 상황판'이 급하다. 중증환자 유형별로 중환자실, 해당 분야 의료진, 수술실 현황 등을 구급대원과 응급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면 '전화 허락' 같은 게 필요 없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웹사이트, 구급대원의 현황 단말기가 제역할을 못한다. 구급대원들은 “항상 다 차 있는데 뭐하러 보냐” “실시간 업데이트될 리 만무하다”고 말한다. 김기운 순천향대 부천병원 권역응급센터장은 "병원마다 24시간 근무하는 코디네이터를 두고 병원 간 실시간 네트워크를 만들고 중앙전원센터와 연결해 실시간 상황판을 만들고, 구급대가 공유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코로나 전담병실을 비우고 대기했듯 응급실도 병상을 50%로 비워두면 된다. 정부가 예산 때문에 안 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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