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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심장수술 의사도 만류했지만…기적적 득남, 그녀의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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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2일 태어난 최씨의 아들 발 사진. 최씨 제공

지난 12일 태어난 최씨의 아들 발 사진. 최씨 제공

“아이를 낳고 이렇게 건강하게 퇴원하는 게 정말 기적 같아요.”

지난 22일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입원 병동에서 만난 산모 최모(29ㆍ부산 남구)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지난 12일 2.77kg의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어 결혼하기 전까지 세 번의 개흉 수술을 받은 최씨는 임신을 결심할 때만 해도 1년여의 세월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 번의 개흉 수술…출산 계획

심장에는 4개의 판막(승모판막ㆍ대동맥판막ㆍ삼첨판막ㆍ폐동맥판막)이 있어 각각이 열리고 닫히면서 혈액이 일정하게 흐르게 돕는데 최씨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승모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폐쇄부전증을 앓았다. 혈액 역류를 막기 위해 한 살 때 판막을 수선하는 승모판막수선술을, 두 살 때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승모판막치환술을 받았다. 중학생이던 2009년에는 커진 체격에 맞게 판막을 교체하기 위해 또 한번의 승모판막치환술을 받았다. 총 세 번의 개흉 수술이었다.

큰 수술을 받긴 했지만 최씨는 학창시절에도 체육 시간을 제외하면 본인이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걸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건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초 결혼을 앞두고 임신ㆍ출산을 계획했던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 최씨를 만류한 건 의료진들이었다. 최씨는 “병원마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아이를 낳아도 된다는 의사도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본인이 실제 분만을 도운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삼성병원 '우먼 3인방' 협진…“매일 두 번 직접 배에 주사 놔”  

22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박성지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와 산모 최씨. 병원 제공

22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박성지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와 산모 최씨. 병원 제공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지가 분명했던 최씨는 지난해 1월 두 번째 승모판막치환술을 받았던 삼성서울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수술 후 현재까지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병원인 데다 인터넷을 통해 고위험 산모들의 출산을 도운 박성지 순환기내과 교수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사연을 들은 박 교수는 “과거에도 심장 판막 수술을 한 40대 산모의 출산을 도운 적이 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박 교수는 그해 8월부터 정수련 심장외과 교수,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 협진을 시작했다. 임신 자체는 수월했다. 석 달 뒤인 11월, 최씨는 8주차 임신부가 됐다. 다른 임신부처럼 입덧도, 갈비뼈가 눌리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를 가장 고통에 빠뜨린 건 매일 두 번씩 맞아야 하는 주사였다.

통상 심장에 금속판막을 넣을 경우 매일 와파린(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혈액의 응고를 방지하는 항응고제)이라는 경구용 약을 먹어야 한다. 한데 이 주사가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료진 판단에 최씨는 먹는 약 대신 매일 아침·저녁, 스스로 주사를 놔 항응고제를 주입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병원 생활을 해 주사가 엄청 익숙했는데도 자가주사는 처음이라 무서웠다”라며 “초반에는 너무 긴장돼 식은땀도 나고 몸도 아팠다”고 말했다. 임신 중기까지는 살집이 있는 아랫배에 주사를 놨지만, 배가 불러올수록 혹시라도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 걱정됐다는 그는 “후반에는 좀 더 고통스럽더라도 팔이나 다리에 놨다. 항상 멍이 들어있었는데 이 몇 개월이 참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신 29주차 심장판막에서 이상 발견…제왕절개 결정

지난 12일 태어난 최씨의 아들. 최씨 제공.

지난 12일 태어난 최씨의 아들. 최씨 제공.

위기는 임신 29주차에 왔다. 심장 초음파상에서 심장판막에 이상이 발견됐다. 임신 중이라 추가 검사를 진행할 수 없자 의료진은 9개월 차에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고, 최씨는 지난 12일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최씨는 재차 어려움을 겪게 됐다. 곧장 시행한 검사에서 인공판막 주변에 혈전이 생긴 것이 확인됐고, 약을 써도 호전이 없자 이틀 뒤인 14일 네 번째 심장 수술이자 세 번째 승모판막치환술을 받았다. 박 교수는 “정말 낮은 확률이었는데 혈전이 발생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씨는 “심장 수술을 다시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도 많이 두려웠지만, 평소 이성적이던 신랑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무서웠다고 말한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눈을 뜬 최씨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낳으니 이전에 수술했던 때와는 달리 회복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를 생각해 잘 먹고, 걷는 연습도 많이 해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리 포기 말고 용기 가졌으면”

최씨는 2주만인 지난 23일 병원 문을 나섰다. 그는 “나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 중에는 너무 정보가 없어서, 겁이 나서 임신과 출산 생각을 아예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라며 “나도 어려운 상황을 만났지만, 의료진들이 너무 잘 대처를 해줘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있다는 걸 알고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성지 교수는 “산모도, 남편분도 협조를 너무 잘해줘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라며 “다른 분들도 미리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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