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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안 다른 사건에서 압수수색한 증거, 재활용해 기소…대법원, 무죄 확정

중앙일보

입력

압수수색 후 폐기했어야 할 다른 피의자의 증거물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면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련 증거를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취득했더라도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조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이달 1일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영관급 장교 출신인 조씨는 방위사업청 근무 당시 무기 거래업자 김모 씨에게 군 소형헬기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김씨는 조씨 사건과 별도로 2014년 특수지원함과 고공침투장비·소형무장헬기 등의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김씨는 이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김씨 사건 기밀 유출의 출처를 쫓던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는 2016년 7월 군 내부자가 김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했을 가능성을 의심해 서울중앙지검에 보관돼 있던 김씨 사건 압수물을 대출받았다. 압수물에는 검찰이 당시 김씨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컴퓨터와 외장 하드디스크, 휴대전화 등의 이미징 파일 사본이 포함돼 있었다.

기무사 수사관은 이 압수물에서 영관급 장교 조씨의 범죄 증거 확보를 위해 군사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e메일 기록 등을 확보했다. 군 검찰은 조씨와 김씨가 주고받은 e메일 등을 토대로 조씨를 기소했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핵심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압수를 완료하면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를 삭제·폐기해야 한다”며 “기무사 수사관이 전자정보의 내용을 탐색하거나 출력한 행위는 위법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집한 전자정보 등 2차 증거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압수물에 조씨의 범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이 담겨있던 점도 지적하며 “수사기관이 새로운 범죄혐의 수사를 위해 무관한 정보가 남아있는 복제본을 열람하는 것은 압수수색 영장으로 압수되지 않은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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