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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코너에 몰린 남·북·미의 선택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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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다사다난했던 봄이 가고 여름의 초입이다. 남북한과 서구 세계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주요 등장인물들이 고를 다양한 선택지를 살펴보기 좋은 때다. 사실 북한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북한은 (한·미를 향해) 협박도 해보고 5년 전 이맘때엔 싱가포르에서 미국과 외교 협상도 시도해봤지만 원하던 결과는 얻지 못했다. 앞으로 나아갈 뾰족한 묘수가 지금 북한 지도부에겐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서구 세계의 상황은 다른가. 2019년 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을 때 외교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은 극적으로 무산됐다. 그 이후로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는 실질적인 대화가 어려웠다.

당시 한국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지만, 남북한 관계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는 교착 상태에 빠졌고 지금도 재개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 모두 외교를 통해 지속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압박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압박·대화 모두 관계 개선 한계
북한은 무기 실험에 계속 의존
한·미, 상황 악화 안되게 힘써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일각에서는 더 많은 풍선을 북으로 날려 보내고, 북한 방송 해킹 등을 통해 대북 정보 유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러한 정보 유입을 막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왔기에 방어벽을 뚫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코너에 몰린 양측에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먼저 북한은 지금까지 정책이 실패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철저한 재평가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북한 정치에서 정책 실패 시인은 위험한 일이다.

외교도 위험하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면전에서 외교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그 사실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접 국가에 큰 위협이 되는 무기 실험은 비용이 막대해도 북한 지도부에겐 안전한 선택지다. 북한 내부의 강경파에게 먹힐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미사일 실험은 그나마 가시적인 성공 사례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무기 실험 외에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의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더 좋은 근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 정치에 발이 묶인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에 발표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융통성 없이 따르며 무기 실험을 계속하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고 향후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직전 촬영된 인공위성 사진에 따르면 발사체 자체는 고도의 기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발사에 성공했더라도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지상수신국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번 발사가 성공적이었더라도 북한의 군 역량이 크게 증대됐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한민국과 서구 국가들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여전히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실현하기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내용 있는 협상의 가능성은 평양의 관심 부재로 거의 없다. 추가적인 압박도 어려워 보인다. 불가능해 보이는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압박이라는 수단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긴장이 높아져도 한반도는 지금까지 실질적 군사 분쟁을 용케 피해오지 않았던가. 실제 전투에 쓰일 가능성이 전무하다면 북한이 무기 실험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과 서구 사회가 한반도 군사 분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북한이 군사적 옵션을 고려하지 못하도록 지속해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미는 연합훈련을 하기 전에 미리 상세한 설명을 통해 북한 당국이 놀라는 경우가 없도록 한다. 더 신뢰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다면 오해의 위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무기 실험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는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이 경우 한국은 미사일 실험에 대한 정교한 대응을 통해 긴장 악화를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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