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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직후 “오래 걸렸네”…미국 비웃은 희대의 스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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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신입 요원 훈련소) 진열장에 보관된 로버트 핸슨의 국무부 신분증과 FBI 명함. [AFP=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신입 요원 훈련소) 진열장에 보관된 로버트 핸슨의 국무부 신분증과 FBI 명함.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수사국(FBI) 역사상 최악의 간첩 스캔들의 장본인인 로버트 핸슨(79)이 5일(현지시간) 감옥에서 사망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핸슨은 FBI 특수요원 신분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20년 넘게 옛 소련과 러시아 스파이로 암약했다.

연방 교정당국은 이날 “핸슨이 오전 6시55분쯤 콜로라도의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의식 없는 상태로 발견돼 응급조치했으나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2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경비가 삼엄한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해왔다.

미 FBI는 홈페이지에서 핸슨 사건을 “미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간첩 사건”으로 소개한다. 20년 넘게 FBI의 방첩 부서 등에서 활동한 베테랑 요원이 러시아의 스파이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소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76년 FBI에 들어온 핸슨은 79년부터 소련에 미국의 민감 정보를 건넸다. 미국 측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소련 비밀경찰(KGB) 요원 3명의 신원 정보도 넘겨 이 중 2명이 처형됐다. 미 정보기관이 도청을 위해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관 아래 터널을 판 사실을 알린 점 등 15가지 간첩·음모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소련의 핵 공격에 대비한 미국의 대응 계획 일부도 넘어간 것으로 FBI는 파악했다. 핸슨은 그 대가로 현금과 다이아몬드 등 140만 달러(약 18억원) 상당의 공작금을 챙겼다.

여섯 자녀를 둔 핸슨은 평범한 아빠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 스스로 “보수주의적 반공주의자”라며 주변을 감쪽같이 속였다. 핸슨의 존재는 KGB 요원 사이에서도 코드명 ‘B’ 또는 ‘라몬 가르시아’라는 가명으로만 알려졌다. 핸슨은 러시아 관리자에게 편지에서 “나는 킴 필비(영국 MI6 요원으로 암약한 소련 거물 간첩)에게 영감을 받아 14살 때 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FBI와 중앙정보국(CIA)은 1990년대부터 러시아에 정보가 샌다는 사실을 파악해 내부 첩자를 찾는 일명 ‘두더지 잡기’에 돌입했다. FBI는 2000년에야 한 전직 러시아 정보장교에게 700만 달러를 주고 ‘B’라는 인물이 러시아 관계자와 대화한 녹취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음성 대조와 지문 감식 등을 통해 핸슨의 신원을 특정했다. FBI는 당시 국무부에 파견된 핸슨을 “승진 대상이라 특별 보직을 주겠다”며 본부로 불러들였다. 이후 핸슨 사무실에 요원을 심어 구체적인 간첩 혐의를 수집했다. 결국 2001년 2월 워싱턴DC 근교 공원에서 러시아 측에 전달할 소포를 들고 있던 그를 체포했다. 이때 그의 첫 마디가 “(나를 붙잡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What took you so long?)”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러 외교 갈등으로 비화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러시아 외교관 50명을 간첩 활동으로 추방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 외교관 50명을 맞추방했다. 그를 둘러싼 첩보전은 2007년 ‘브리치’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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