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그루밍 시대] 화장대 앞에 선 그대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시트팩에 난 구멍을 눈과 코에 맞춰 팩이 뜨지 않게 이마부터 눌러 붙이세요. 그리고 15분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팩을 붙이면 어떤 효과가 있는 것입니까?”

“시트팩은 피부 보습과 각질 제거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지난 12일 아모레퍼시픽 남성화장품 브랜드인 오딧세이에서는 20~30대 남성들을 초청해 ‘그루밍 클래스(Grooming Class)’를 열었다. ‘그루밍’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과 남성의 가꾸기를 따로 일컫는 말이다.

37명의 남성이 참가한 이 강의에서는 남성에게 맞는 올바른 세안법, 피부관리 등을 설명했다. 스킨과 로션만으로 모든 준비를 끝냈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성만의 화장품이라 여겼던 에센스, 마스크 팩, 컨실러 등을 남성이 사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딧세이 측 조사에 따르면 남성 600명 중 25% 이상이 팩이나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1.8%는 외출시 꼭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다고 했다.

이날 강의에 참가한 이경호(32)씨는 “남성의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가 왔다. 당당하고 깔끔한 인상을 가져야 고객들과 업무를 수행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 며 “좀 더 효과적인 피부관리법을 알기 위해 강의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스킨·로션은 물론 자외선 차단제, 마스크 팩 등을 통해 피부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실제로 이날 참석한 대부분의 남성이 꾸준히 마스크 팩, 컨실러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모레퍼시픽 김미선 강사는 “근래 들어 남성들이 피부 트러블, 각질 제거 등에 관해 자주 상담문의를 해온다”며 “그루밍 클래스도 남성들의 이 같은 호응에 답하고자 준비한 이벤트”라고 말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대부분이 남성을 새로운 타깃으로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그만큼 시장이 커졌다는 뜻이다. 아모레퍼시픽 오딧세이는 ‘100인의 스포츠 클럽’이라는 프로슈머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클럽은 오딧세이 신제품을 직접 이용해 보기도 하고, 신제품 개발시 의견을 반영하는 등 남성들이 자신을 가꾸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나누는 모임이다.

또 몇몇 화장품 업계에서도 남자를 뜻하는 불어 ‘옴므(Homme)’란 단어를 사용해 브랜드화하고 있다. 여성 패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 ‘디올 옴므’를 론칭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매년 10%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2800억원가량이던 시장 규모가 올해는 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4년 만에 2배 성장한 셈이다. 화장품협회는 “일반 화장품뿐만 아니라 남성 기능성 화장품 시장도 매년 2%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며 “눈가 주름, 미백 효과 등 특정 역할을 해주는 기능성 화장품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백화점·성형외과 등에서도 남성을 쇼핑의 큰손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남권 백화점들은 이미 남성 전용매장을 운영,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백화점은 남성의류 매장과 남성전용 화장품 매장을 한곳에 모아둔 ‘편집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전에는 여성화장품 매장과 함께 운영됐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성 전용 스킨케어 공간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에는 ‘스킨케어 룸’을 차려 피부손질까지 해주고 있다.

또 신세계백화점은 남성복 브랜드 매장을 모아둔 편집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매장과 달리 캐주얼부터 정장까지 여러 종류의 옷을 모아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업계는 “남성도 꾸미는 시대가 옴에 따라 미혼 남성들이 쇼핑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 편집 매장은 매년 40% 이상의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또 대형 할인마트 역시 남성 화장품 매출이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남성 전용 성형외과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많은 남성이 피부미백 시술, 보톡스 시술, 주름 제거술 등을 받고 있는 것이다. 3개월 전 피부미백 시술 경험이 있는 황모(26)씨는 “여드름 흔적이 많아 사람을 대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자신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 지금은 작은 눈을 숨길 수 있는 쌍꺼풀 수술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성형외과 업계는 남성 시장에서 매년 20% 이상의 매출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화장품·패션 업계뿐만 아니라 유통 업계에서도 남성 전용 아이템은 인기다. 조선호텔은 오는 26일까지 남성전용 주말 패키지 ‘옴므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이 패키지는 남성들을 위한 몸만들기 트레이닝, 골프, 휴식 프로그램이다. 특히 몸만들기는 호텔 피트니스 센터의 전문트레이너가 체지방 분석부터 개인별 맞춤 운동법까지 제안해준다.

이제는 남성 그루밍이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의 외모관리가 당연시되고 대중화된 것이다. ‘꽃미남’ ‘매트로 섹슈얼’에 이어 ‘위버 섹슈얼’이라는 새로운 남성상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 역을 맡았던 배우 이준기가 대표적인 예다.

남성 패션·뷰티 시장이 여성 시장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시대는 지났다. 이제 남성 패션 시장도 디자인·색상 등에서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고 유행코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경기가 불황이지만 업계에서 남성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최남영 기자 [hynews01@hanmail.net]

<이코노미스트 864호>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