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6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제3부 남로당의 궤멸/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박헌영 구출도 끝내 허사로/김일성,남로당 쿠데타 구실 탄광보내 “학살”
길을 알게되자 몰래 평양으로 나가서 평양에 아직 남아 있는 남로당원들과 연락을 취해 그간의 정보를 알아보고 싶었다. 60리길이니 내 걸음으로 4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었다. 왕복 8시간,평양시내에서 1시간,도합 9시간이면 감쪽같이 평양에 다녀올듯 했다.
오늘은 먼산에 가서 약초를 캐온다하며 주먹밥을 한덩어리 얻어 아침 일찍 산중을 떠났다. 산고개를 넘어가는데 뒤에서 군용화물차가 숨가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길옆 소나무밑에 숨어 있다가 화물차 뒤를 따라붙어 짐칸에 뛰어 올랐다. 그때는 교통수단이 없어 흔히 군용화물차 짐칸에 민간인이 타고 다녔다.
평양시 입구에서 뛰어내려 시내로 들어가니 아직 11시도 안됐었다.
모란봉에 올라가 주먹밥을 먹고 점심시간이 되도록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돼야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시간이 되어 대동강가로 나가니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문예총에서 일하고 있는 북로당원이었다.
그는 상상외로 나를 반가워하며 무사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발도 깨끗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하다고 하니 절대 비밀이라 하며 자기고향이 평북 철산군인데 지금 박헌영 선생이 철산군내에 감금당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박헌영 부인이 경비부대원을 매수해 박헌영선생을 바다로 탈출시키려다가 도중에 발각되어 박헌영선생과 부인·아이들이 격리되어 분리 감금되어 있다. 박헌영 선생은 미제의 간첩이라는 것을 최후까지 부정하므로 셰퍼드를 방안에 넣어 물어뜯게 하는 고문을 가해 다 죽게되어 의사가 탄 자동차가 며칠간 좁은 산골길을 내왕하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보았다고 한다. 이북사람들도 박헌영선생을 동정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동무! 그곳이 어딘지 좀 자세히 알려줄 수 없소』하고 물으니 『우리 고향 동네에서 한 20리 되는 곳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거기 가는 길을 좀 그려주시오. 지도를 상세히….』그는 『지금은 종이도 연필도 없으니 이다음 만납시다. 그때 그려다 주겠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초조했다.
어디서 수류탄을 몇개 훔쳐가지고 가서 경비원들을 몰살시키고 박헌영을 탈출시켜 가까운 황해바다로 나가 머나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대동강 가까운 스탈린거리에서는 남로당원을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가루게 시장쪽으로 돌아가니 누가 『야!』하고 손을 내미는데 강처삼이었다. 그는 와세다대학의 1년 선배로서 김일성의 외족인 강양욱의 일족이었다. 언제봐도 좋은 양복을 입고 다녔다.
그와 함께 가는데 누가 내옆에 다가서 따라오며 『박선생님!』하고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서울 지하당에서 연락원을 하고 있던 C였다. 우리는 가루게 시장안으로 들어가 빙빙돌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정치보위부에서 나에 대한 것을 조사하러 왔었다고 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군사분계선 부근에 있던 남로당 빨치산을 대동강 남쪽인 중화로 옮기려 했는데 이것을 김일성이 자기에 대한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라고 일망타진해 백두산밑 5호농장과 두만강변 아오지탄광에 보내 굶어 죽이고 얼어 죽이고 낙반이 될 탄광속에 넣어 다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남반부 빨치산의 혼련교육기관인 금강학원장 김응빈은 체포하러 오는 것을 알고 탈출했으나 38선을 넘다가 지뢰를 밟아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며 평양에 와서 부상을 하고 있던 김점권은 권총으로 부부자살을 했다는 등 이야기가 계속됐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헤어지면서 『결사대 다섯명만 모아라. 그리고 수류탄 다섯개만….』하고 부탁하니 그는 왜냐고 물었다. 『박헌영선생을 구출해야 한다. 김일성 도당이 우리의 대장을 죽이고 그 부하인 우리를 그냥 살려둘줄 아느냐. 박선생이 죽고나면 우리도 다 죽는다. 1주일 후 이자리 이시간에.』
나는 명령하듯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고는 번개와 같이 그 자리를 떠났다.
아! 오늘 평양에 나온 것은 대성공이다.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나는 출생 후 처음으로 하느님을 불러봤다.
바람에 날듯이 걸어 나의 감금소로 돌아갔다. 1주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전날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문을 열어보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미칠 것만 같았다. 아침밥을 먹고나니 하늘은 먹칠한 것 같고 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집을 나섰다.
우산 하나,삿갓 하나 없었다. 얼마 안가서 전신은 흠뻑 젖고 말았다. 신발은 황토에 빠지고 개울을 건너다가 바지자락까지 빠지고 말았다. 아! 하느님도 무정하다.
나는 물귀신과 같이 되어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했다. 약속했던 날은 이렇게 돼 실패하고 그 다음주에 나갔으나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