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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파'…'실용파'… 임기 말 권력 관리 고민은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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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오후 귀국했다. 5박6일간의 베트남 하노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과 캄보디아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뒤였다.

돌아온 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건 최악의 민심 이반과 여권 분열이라는 심각한 상황이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성난 민심, 회생 조짐이 안 보이는 서민경제,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론 분열,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는 열린우리당의 무기력증….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난국이다. 국면 전환이 필요하지만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고민의 본질이다. 노 대통령의 장고(長考)가 시작됐다는 게 주변 참모들의 얘기다.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까. 일단 "정부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진용을 새로 짜야 한다"는 얘기가 힘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전면 개편론과 개각이다. 시기는 정기국회가 끝난 뒤인 12월 중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백만 홍보수석의 강남 아파트 문제가 터졌을 때 겉으론 쉬쉬했지만 열린우리당 내부는 들끓었다.

"기껏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청와대가 한 방에 톡 털어먹는 꼴이 반복되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청와대 전면 개편을 요구해 놓고 있다.

개편의 최우선 목표는 임기 말 국정 운영과 권력 관리다. 노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국정운영 마무리 방향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권 핵심 인사는 "자기 사람들이 다 해먹는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 이런저런 사람으로 청와대를 구성했더니 (일부 인사가) 코드를 내세워 오버하는 바람에 국정운영이 흐트러진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는 정말 노 대통령과 생각을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 남은 임기를 정리하고, 또 그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탄생의 주역인 '창업파'가 전면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문재인 전 수석과 신계륜 전 의원의 역할론이 등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부산파' 쪽에서는 문 전 수석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라인업에 포진한 '실용파'와 창업파가 임기 말 권력 관리의 주도권과 노선을 놓고 갈등하는 양상이다.

남은 건 노 대통령의 결단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번 정무특보단의 임명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발표 당일 손수 작성한 명단을 공개했다. 그래서 핵심 참모들조차 알지 못했다.

고려 대상엔 정계개편과 내년 대선에 대한 노 대통령의 구도도 포함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한 친노(親盧) 직계 의원은 "당을 이대로 가져가면서 대선을 치를 경우 신 전 의원을, 분당(分黨)을 상정해 새로 판을 짜야 할 경우 최측근 인사인 문 전 수석을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이병완 실장을 유임시키면서 정국을 관리하자"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은 연말 개각의 방향을 놓고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표가 수리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연말에 당으로 복귀할 유시민 보건복지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의 후임 인사를 통해 내각의 분위기를 바꾸고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했다.

이수호.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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