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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정치(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47세,최연소 장관,극빈자 보조를 받은 일이 있는 유일한 관료­. 헤럴드 트리뷴신문은 요즘 그의 프로필을 이렇게 소개했다.
영국 보수당의 새 당수로 뽑힌 존 메이저의 경력이다. 그는 집권당의 당수가 총리를 겸하는 관례에 따라 이제 대처의 뒤를 이어 영국 총리가 되었다.
트리뷴지의 프로필은 좀더 남아 있다. 『…서커스단 곡예사의 아들,고등학교 중퇴,16세 소년시절의 육체노동자 생활.』 그밖에 이런 얘기도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버스표 수집원도 했는데 그나마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셈을 제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신분을 따지고 명문대학을 가리는 영국제국에서 재무장관 자리까지 올라간 사실은 꼭 무슨 동화라도 읽는 것 같다. 지금 그는 재무장관이 아니라 총리까지 되었다. 명문학교 출신은 고사하고,명문가와는 좁쌀 만한 인연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메이저는 영국 정계에선 대처가 하늘에 의탁해 얻은 「점지된 아들」로 통할 정도로 대처 사람이다. 그가 외무장관에 기용된 것이 작년인데,몇 달 전엔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오늘 그가 헤슬타인이나 허드와 같은 명문대학 출신의 관록있는 유력자들을 뿌리치고 투표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처의 사려깊은 정치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처가 만일 총리자리에 연연해 정치적으로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는 자기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처는 많은 국민들이 아쉬워하는 듯한 순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진퇴를 분명히한 것이다. 그의 공관 앞엔 시민들의 화환이 쌓이고,그에게 비난을 퍼붓던 보수당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대처는 그만두는 시기를 절묘하게 놓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고,귀족 행세하기 좋아하며,집안도,학교도 명문만 따지는 영국 사회에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을 총리로 받아들인 것도 놀랍지만,우리의 눈엔 또 하나 다른 것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런 정치를 연출한 대처의 명쾌한 정치력이다.
정치도 이쯤은 되어야 멋이 있고,국민들의 기분도 좋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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