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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0~20대 극단선택 급증, 짙어가는 우울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36호 30면

전체 자살률은 감소, 10~20대는 4년 새 40% 폭증

치열한 경쟁 스트레스, SNS 비교로 상대적 박탈감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정신과 치료 문턱 낮춰야

며칠 전 서울 강남구에서 여학생 A양이 극단선택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SNS)로 생중계돼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과정을 수십 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해 논란이 됐다. 계속해서 자극적인 것을 찾는 온라인 관음증과 삶의 마지막 장면까지 생중계하는 지나친 SNS 의존증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했다.

더욱 큰 문제는 극단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밈’처럼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A양이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우울증 갤러리는 극단선택 관련 글이 종종 올라온다. 사고 직전 A양도 ‘동반 투신자를 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린 20대 남성을 만났다. A양 외에도 지난 3년 동안 이곳 활동자 10여명이 극단선택을 했다는 복수의 증언도 나온다.

심지어 정서적으로 취약한 10~20대 여성만 노리는 남성들이 있다는 제보까지 있다. 고민 상담 등을 빌미로 접근해 가스라이팅(교묘한 심리적 지배를 통한 착취)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만큼 철저히 진상을 가려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 “울갤(우울증 갤러리) 접어라”는 A양의 마지막 말처럼 커뮤니티에 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10~20대의 취약해진 정신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7년 7만8016명에서 2021년 17만7166명으로 127% 급증했다. 불안장애 환자(20대)도 같은 기간 5만9080명에서 11만351명으로 87% 늘었다.

자살률도 심각하다. 전체 자살률은 2011년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인데, 유독 10~20대만 늘고 있다. 2017~2021년 20대 자살률은 16.4명(10만 명당)에서 23.5명으로 증가했다. 20대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56.8%나 된다. 같은 기간 10대 자살률도 4.7명에서 7.1명으로 늘었다.

10~20대의 정신건강이 위험수위에 다다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된 탓이 크다. 전국의 또래와 경쟁했던 학력고사나 수능 중심의 과거 입시와 달리 현재는 내신 때문에 가까운 급우까지 경쟁자로 인식된다. 아울러 자아확립이 덜 된 상태에서 지나친 SNS 의존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정서적 만족감을 낮춘다. 성인이 된 뒤에도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급증하는 10~20대의 극단선택과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나치게 치열한 입시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카페인(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우울증처럼 SNS에서 남과 비교하고 과시하는 물질 중심의 풍조도 바뀌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울증 유병률 1위(36.8%)인데, 인구 100명당 항우울제 소비량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치료율(11.2%)도 미국(66.3%)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다만 지난해 12월부터 치료 문턱이 낮아진 것은 다행이다. 정신과가 아닌 가정의학과·산부인과·신경과 등의 항우울제 처방을 연간 60일로 제한했던 규제가 폐지되면서다. 이로써 우울증 환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짧은 치료 기간으로 인한 재발 우려도 낮출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홍보가 부족하고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문화도 만연해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여기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시민의 인식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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