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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시선

대법원장추천위와 김명수의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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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대한민국에 삼권분립 원칙이 작동한다는 말은 요즘 믿기지 않는다. 서로 견제를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를 벗어나 다른 쪽에 부여된 권리를 빼앗기에 혈안이 된 모습 때문이다.

입법독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의원 수를 앞세워 각종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려 한다. 대법관들 경우처럼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거기에서 대법원장 후보를 추려내겠다는 내용이다.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제104조)는 규정에 어긋나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위헌 논란을 접더라도 수긍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최기상 의원 등 44명이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추천위는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대법관이 아닌 법관, 법관 외 법원공무원 등 6명과 비법조인 5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한데 법무부 장관(혹은 장관이 추천하는 사람)이 빠졌다. 성격이 비슷한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에 포함된 법무부 장관을 굳이 제외했다. 인사검증 권한이 법무부에 있어서 그랬다지만 행정부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위헌논란 탓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시행된다면 또 다른 이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11명의 추천위원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는데, 법원행정처장과 법관, 비법조인 5명 등 7명이 김명수 현 대법원장 뜻대로 정해진다. 이렇게 되면 차기 대법원장 추천 과정에서 김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될 여지가 크다. 이 때문에 “사실상 헌법상 대통령에게 있는 대법원장 추천권을 민주당이 빼앗아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법안을 추진한 민주당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임기를 마친 대법관들 교체가 진행되고 있는데, 7월에 퇴임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까지는 김 대법원장이 관여한다. 그 이후 퇴임하는 9명의 후임은 차기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한다.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 절차가 있지만 차기 대법원장이 대법원 구성에 큰 역할을 한다.

차기 대법원장 추천위 논란
사법부 장악 시도로 해석돼
김 대법원장 의견 제시해야

헌법재판소의 구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에 대한 지명권을 갖는다.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해 헌재가 유효 결정을 내린 데에는 재판관들의 정치색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9명 중 5명이 각하, 4명은 취소 결정을 내렸는데, 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이 우리법연구회ㆍ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ㆍ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결된다. 이들은 민주당이 주도한 입법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법의 효력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2019년 긴급 출국 금지가 위법했다고 하면서도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의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선고한 것과 너무 닮은 논리다. 이 정부에서 재판관 9명이 모두 교체되고, 새 대법원장은 윤 대통령보다 더 긴 임기를 누리며 이후에도 재판관을 지명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김회재 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권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오히려 의원들에게 필요한 책으로 여겨진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진리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불안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 중 가장 소중한 건 국민에게서 입법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의 역할이다.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검찰과 법원으로 주요 사안을 내던져 ‘정치의 사법화’를 조장하는 것도 모자라 사법부를 쥐고 흔들려 하고 있다. 삼권분립은 다른 권력의 권한이 넘칠 때 이를 견제하고, 이에 더해 자신의 권력 행사를 자제할 수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정치 공해를 불러오자 개정 넉 달 만에 재개정에 나선 ‘현수막법’과 같은 코미디 의정활동이 이를 반증한다.

아쉬운 게 또 있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이다. 다른 법도 아닌 차기 대법원장과 관련한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는데 민주당 의원들과 그는 이견 조율을 했던 것인가, 아니면 개정 법안이 비판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사법부 내부 문제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에 제대로 된 대책도 못 내놓고 있다는 법원 안팎의 비판이 많다. 6년 전 대법원장에 지명될 당시 혼자 근무지인 춘천에서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대법원에 도착했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