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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제로' 이 중학교 비밀...'현실판 문동은'이 기적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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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격중학교 임민식 선생님은 "가해 학생까지 돌봐야지 학교 폭력의 악순환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임민식 제공]

산격중학교 임민식 선생님은 "가해 학생까지 돌봐야지 학교 폭력의 악순환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임민식 제공]

“‘나는 상처 주는 카톡이나 뒷담화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맞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앞에 나와주세요.”

임민식(41)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무대로 뛰쳐나왔다. 지난달 31일 낮 1시, 대구 학남중학교 강당에서는 1학년 신입생 250명과 함께한 ‘공감 프로젝트’ 현장이다. 공감 프로젝트는 임 선생님이 직접 개발한 학교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다. 여느 학교의 폭력 예방 교육처럼 꾸벅꾸벅 조는 학생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님 주호민 닮았죠. 지나가다가 선생님 만나면 ‘주호민 선생님’하고 인사하면 돼요.” 마지막은 임 선생님의 활기찬 인사였다. 학남중 1학년 김강은(13) 학생은 “친구들이 재밌어하는 걸 보니 저도 즐거웠고, 사이버 폭력도 대면 폭력으로 이어져서 일이 커질 수 있다는 것 등 모르는 부분을 알게 돼 유익했다”고 말했다.

대구 산격중학교 생활안전부장 겸 학교 폭력 책임교사(옛 학생주임)인 임 선생님은 올들어 대구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10개 학교를 돌며 ‘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임 선생님은 “신입생 때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갖고, 자연스럽게 ‘서로 다르지만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익히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골치아픈 자리라 한 학교를 감당하기도 어렵다는 ‘학생주임’이 어쩌다 전 시내를 돌며 학교 폭력 예방 교육에 나섰을까. 임 선생님이 일군 ‘산격중의 기적’이 입소문을 탄 결과다. 11년 전 처음 산격중에 발령받았을 때 전교생이 250여 명에 불과한 이 학교에선 한 해 학교 폭력 심의만 27건 씩 열렸다. 임 선생님은 “지인들도 ‘큰일’이라고 걱정해줬을정도였다”고 말했다.

임 선생님은 몇몇 선생님들과 뜻을 모아 학교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갔다. 학교 부적응 청소년들을 모아 극단 ‘반창고’를 만들고 매주 주말마다 뮤지컬 연습을 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할 때까지 쉴 틈 없이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거리를 좁혔다. 2017년 11월 첫 작품 ‘후 엠 아이’가 무대에 올랐다.

임 선생님의 노력으로 집으로 돌아온 가출 청소년도 여럿이다. 몇 해 전 딸의 반복되는 가출에 가슴앓이를 하던 어머니가 임 선생님을 찾아왔다. 어렵사리 학생을 만난 임 선생님이 건넨 말은 “돌아와라”가 아니었다. “너도 많이 힘들지. 네 맘 충분히 이해하니 강제로 들어오라고는 안 할게.” 임 선생님은 밥을 사먹인 뒤 식료품을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 뒤에 학생은 학교로 돌아왔고 그 뒤로 한 번도 가출하지 않았다.

“관심과 사랑을 주면 결국 알아주더라고요. 집을 나가는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앉혀 놓는 게 다가 아니거든요. ‘이 선생님은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행동이 따라 바뀐다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아요.”

산격중의 학교 폭력 발생 건수는 서서히 줄었고, 2020년 이후로는 학교 자체적으로 발생한 학교 폭력 관련 심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산격중은 학교 폭력 예방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부터 3년 연속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임민식 선생님이 대구 학남중학교에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임 선생님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관심을 줘야 바뀐다"고 강조했다. 임 선생님은 지금도 전 학년 아이들과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대화를 나누느라 바쁘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느라 하루 2만보 가까이 걷는다고 한다.

임민식 선생님이 대구 학남중학교에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임 선생님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관심을 줘야 바뀐다"고 강조했다. 임 선생님은 지금도 전 학년 아이들과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대화를 나누느라 바쁘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느라 하루 2만보 가까이 걷는다고 한다.

 남들이 궂은 일이라는 학교 폭력 예방 책임을 맡는 데는 임 선생님의 ‘과거’가 작용했다. 그도 피해자였다. “어릴 때는 몸이 왜소했거든요. 그 학생들이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는 이것저것 지시하며 못된 짓을 많이 했죠.” 힘센 아이들의 숙제를 해주거나 신발 주머니를 드는 역할도 매일 떠맡았다.

임 선생님이 지금도 학교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저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착실하게 공부한 모범생 선생님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아이들 잘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임 선생님은 학교 폭력 예방 전문가로 나설 참이다. 올해부터는 영남대학교에서 교육행정 관련 박사 학위 과정을 듣고 있다. ‘나처럼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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