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주부들 정치관심 높아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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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여성 표를 잡아라.』
지난번 대통령 선거와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각 정당이 수립한 득표 전략중의 하나다. 이때 선거현장을 뛰었던 사람들이 절실히 느꼈던 것은 이제는 여성들이 남편이나 자녀의 의사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가족들의 의사를 결정짓는데 주부들의 의견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게 이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변화였다.
지난해 6월 한국여성개발원이 실시한「정치활동 지도자연수」에는 전국에서 1백30여명의 정치 지망생들이 교육을 신청 해와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을 염려한 연수준비 관계자들의 불안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개발원 측은 선착순 마감이후 신청자들을 돌려보내느라 진땀 깨나 흘렸다.
이같이 정치의 문외한, 대표적인 정치 무관심 집단으로 간주되던 여성들, 특히 주부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여성 정치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국 여성 정치문화 연구소·한국 여성정치 연구소가 지난해 6월과 올3월 잇따라 문을 열었고 기존의 한국 여성 유권자 연맹이 전국 각 지부에서 실시하는 여성 유권자 교육에도 수십∼수백 명의 주부들이 강연에 참가해 정치에의 관심을 보였다.
또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라디오 프로인『황인용, 강부자 입니다』, TV프로『생방송 여성』은 올 가을「여성과 정치」에 관한 기획 토론시간을 마련, 주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 여성 정치문화 연구소가 올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86%정도의 여성들이「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해 달라진 주부들의 의식을 반영했다.
『정치 판에도 직접 나서겠다』는 여성까지 대거 등장하는 이 같은 현상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 손봉숙 한국 정치 연구소장은『전세계적으로 영국의 대처, 필리핀의 아키노, 일본의 도이 등 여성지도자들이 활약하고 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활성화된 것이 계기가 됐고 최근의 지방자치제 실시 논의가 촉매제 역할을 해 이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여성 유권자 연맹 양경자 간사는『전에는 여성 정치교육에 참가하는 주부들이 일방적으로 듣고 고개만 끄덕였으나 요즘엔 자발적으로 질문도 하고 반대의견도 제시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다』며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아예 외면하고 시사성 있는 주제를 교육할 경우엔 눈을 빛내며 열심히 귀 기울인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이같이 높아가는 정치에의 관심은 여-야 당의 여성정책에도 서서히 변화를 준 게 사실이다.
작년에 통과된 가족법 개정이 있기까지는 주부들이 보낸 수만통의 협박(?)편지가 남성 국회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현재도 논란이 많은 탁아입법에 양대 정당은 자녀를 둔 주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
지자제에 대비, 여성 출마 예상 자들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김정숙 한국 여성 정치문화연구 소장은『현재와 같이 타락하고 오염된 정치에서 여성정치인들이 대거 진출할 경우 부정·타락선가를 조금이라도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은 점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경우 여성 정치인들의 보다 많은 당선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소장은『그러나 아직도 주부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다른 분야에 비해 그 변화 속도나 양상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구 비로 보아 잠재력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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