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견고해 철거 “진땀”/보안사 서빙고분실 허물던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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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재야·운동권 인사엔 공포의 대상/주민 “다른곳에 또 생기면…” 걱정
군부의 대민사찰·공작 본산으로 알려진 보안사 서빙고 분실의 막바지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2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언덕위 보안사 서빙공 분실에는 4명의 인부만이 망치와 드라이버로 마지막 남은 퀀싯 건물의 해체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보안사 민간인사찰 파문의 여파에 따른 국방부의 결정으로 이미 한달전부터 시작된 철거작업이 마무리에 들어간 것이다.
3천여평 정도의 영내는 이미 막강했던 지난 시절의 위용은 찾아볼 길 없었고 군데군데 건물을 헐고 남은 깨진 벽조각과 인부들이 마시고 남은 깨진 소줏병이 널려 있어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립식 건물신축,철거전문 회사인 대호기업소속 인부라고 밝힌 고찬진씨(26)는 『오늘 중으로 마치기로 하고 오전8시부터 와서 작업중인데 워낙 견고하게 지어서 하루쯤 더 걸릴 것같다』고 말했다.
인부들은 자신들이 헐고있는 건물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모른채 『왜 이렇게 튼튼한 건물을 철거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실은 비록 헐리고 있었지만 외부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정문에서 50m쯤 아래쪽으로 떨어진 대로쪽 진입로를 높이 2m가 넘는 나무판자로 차단해놓고 있었다.
이에대해 인근주민들은 『최근까지도 이곳의 서슬이 퍼래 감히 얼씬도 못했는데 철거작업이 시작된 뒤 너도나도 정문에서 진입로사이 공간에 차를 주차시키자 며칠전 판자 차단막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입로 바로 옆 문방구점의 40대 여주인은 『윤석양이병 폭로직후 대학생들이 한차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잡혀 갔지만 그들도 겁이 났는지 길 건너편에만 모여 있었다』며 살벌했던 당시와 지금의 달라진 분위기를 비교했다.
수많은 좌경사범과 재야인사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검은색 철대문은 높이 2.5m,폭 4m 정도로 여전히 당당한 모습이었으나 대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흰색 아치는 몇조각으로 깨져있었다.
대문안엔 높이 2m 이상되는 블록담장이 철조망과 함께 사방으로 둘러쳐진 가운데 3개의 수은 보안등과 은행·포플러·전나무 등 1백여 그루의 나무사이로 자리잡은 잔디밭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분실이 들어선 것은 60년대. 특히 72년 유신이후 각종 수사와 정치공작으로 악명을 떨쳐왔다.
군 당국은 분실 폐쇄후 빈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이곳에 자리잡았던 보안사 대공6과가 어디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 동네에서 10여년간 살았다는 한 주민은 『분실이 폐쇄되는 것은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또다른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기관이 들어선다면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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