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강화로 「슈퍼차르」된 고르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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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 최고회의 비상대권 부여의 의미와 문제점/민주개혁 가속·행정능력 향상에 도움/군부·관료들 지지… 개혁파 설득이 과제
소련 최고회의가 23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포괄적인 행정개혁과 비상경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고르바초프는 다시한번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로써 지난 10월 이미 확보해놓은 경제정책에 관한 임시 권한과 함께 이번에 포괄적 비상대권을 확보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슈퍼차르」로 탄생한 셈이다.
고르바초프는 이 권력을 이용,민주적 개혁을 보다 더 급격하고 완전하게 이룩할 수도 있고,과거의 권위주의적 독재로 돌아갈 수도 있게 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옐친·아파나셰프 등 급진개혁파 지도자들이 우려하고 있던 고르바초프에 대한 권력집중의 위험성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강력한 권력의 집중이란 행정능력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축복일지 모르나 다른 한편으로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민주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는 면에선 불행의 시작일 수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최고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구체적인 정부개편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개각과 행정체제의 효과적인 개편의사를 밝히면서 비상경제조치를 취하기 위한 새로운 권한의 위임만을 요구했다.
소련의 개혁성향 신문들은 고르바초프가 주장하는 권력구조개편,정부구조개편이 단순한 인물의 개편인지,아니면 정책의 근본적인 개편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실시된 이래 파탄지경에 이른 소련의 정치·경제적 위기는 각 공화국들의 독립 또는 주권선언,고르바초프의 실정을 공격하는 요란한 목소리의 개혁파 지도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금 소련의 위기는 ▲인민들의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하는 정부 ▲고스플란(국가 계획위원회)등의 지침을 고수하는 무리한 정책 적용 ▲공화국들이 반대하고 있는 신연방 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확보한 비상대권이 고르바초프뿐 아니라 소련내의 다양한 정파들에 축복의 힘으로 작용하려면 무엇보다 고르바초프의 선의와 각 공화국 및 민족주의 단체들과의 정치적 공통분모의 모색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의회내에서 자신이 새로운 포괄적인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각 지방 공화국·의회·정치단체·민족주의 단체들의 협력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는 이 권력을 활용해 지지를 얻기 위한 회유와 위협의 양면작전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지지나 동맹이란 현실적인 이익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감안할때 그가 확보할 수 있는 동맹우군이 과연 누가될지는 대충 추론할 수 있다.
우선 가장 확실한 지지세력은 군부와 관료세력들이다.
이들은 개혁파에 의해 정권이 찬탈되거나 현재의 상황이 계속 악화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경우 그나마 확보해놓은 기득권마저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해 고르바초프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의 성향으로 보아 각 지방 공화국중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멘·키르기스,타지크·우즈베크공화국 등은 고르바초프의 신연방법 및 제반정책을 조건없이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정치·경제적 중요성을 높여가고 있는 각 자치공화국들도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있는 개혁적 사고의 고르바초프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할 것으로 간주해 지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은 것은 새연방법에 서명 및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4개공화국(발트해 3국과 그루지야공화국)과 독자적 정책을 고집하는 주권선언 공화국 급진파들을 어떻게 회유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들과의 광범위한 협의와 참여를 통한 집행위원회(안보위원회·통제위원회) 등을 구성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전 정지협의가 끝난후 고르바초프는 ▲비상배급할 식량의 목록표를 작성,이를 집행하고 ▲지하경제 및 매점매석 등을 통해 경제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단호한 조치 ▲이를 강제할 특별경찰부대의 창설 등을 통해 인민의 지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후 군부 및 각 정파,공화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법령들을 대통령령으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결국 각 정파와 공화국들이 고르바초프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익을 확보하고 설득을 당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겠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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