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삶」을 시로 승화 시인 송명호씨|구두닦이·막노동꾼으로 인생 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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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불혹. 세상을 40년 가량 살았으면 이제 삶에 흔들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대부분의 삶이 언제 흔들림이 있었는가. 잘 짜여진 제도 덕분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평안했던가. 『한번, 또 한번 더 뒤돌아 뒤돌아보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지우개를 들고 또 얼마나 문질러야 하는가
서른 일곱 해 몇 개월이던가 그 사내의 삶은 괜찮았던가.』
38세가 되어서야 처녀 시집 『바람에 찍은 혜초의 쉬임표』(새물결간)를 펴낸 송명호씨는 자신의 삶을 시집 후기에서 이렇게 묻는다. 『그 사내의 삶은 괜찮았던가』라고. 그러나 송씨는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삶을 그냥 토해버리고 만다.

<11살 때 부모 잃어>
『아아 그 가난과 아픔, 만약에 신이 있어 뒤돌아 가라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리라. 저 하늘과 당은 초라한 몸둥아리와 가슴을 내팽개치기만 했지』
한 백년 머물다 흙이 될 이승의 삶이라면 산전수전 다 겪는 인생 유전은 얼마나 부러운 삶인가. 「불혹」이니「이순」이니 하는 고전적 삶이 사라진, 길들여진 온화한 현대적 삶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송씨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별다른 재주도 없지, 몸도 약하지, 풍요롭지도 못하고 열등감만 느끼며 살았던 자신의 삶을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다고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삶이었더라도 다 겪고 보면 차라리 자랑스런 아름다음이 될 것도 같은데 송씨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한사코 거부한다. 옆에서 보고 듣는 사람한테는 절망적인 인생 유전도 아름답고 삶에 희망을 주지만 겪어낸 당사자는 그러한 구경꾼들을 「낭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몰아붙인다.
세상이 한창 설레게 열릴 나이 11세 때 양친을 잃고 신문팔이·구두닦이 등으로 이어 가야했던 초·중·고의 학창시절. 몸에 힘이 붙은 20대 때는 남해안·동해안 등의 바닷가, 춘천·대구·부산·안동 등을 전전하며 막노동꾼으로 당파고 벽돌 나르고 닭치고 다방에서 코피도 끓여야 했던 삶을 송씨는 살았다.
무엇이 그의 삶을 그토록 흐르게 만들었을까. 기댈데 아무도 없이 이 땅에 그냥 내팽개쳐진 삶이었기 때문인 것일까. 그러나 그의 삶을 흐르게 만든 것은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 제도 아무 것에도 편입되지 않고 원초적·야성적인 삶을 바라서였기 때문이다.

<날품팔이로 연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삶을 차리기 위해 송씨는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그러나 체질에 안 맞아 팽개쳐버리고 품팔이로 떠돌았다. 남들은 하루 품삯으로 1천5백원을 받던 시절 몸이 약하다고 5백원을 받으면서도 송씨는 떠도는 삶을 택했다.
『아무도 없이 내팽개쳐진 몸 끝간데 없이 학대해보고 싶어 떠돌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가서 다시 일어서고픈 그 욕망이들 때까지 낮게낮게 열등감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끝간데 없이 떠돌다 32세 때 송씨는 대학에 들어갔다. 비천함·열등감을 겪은 만큼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1년6개월 동안 초막에서 문 걸어 잠그고 공부만 했다. 삼다 불도 안 땐 방에서 엎드려 공부하다 가슴에 동상까지 걸린 끝에 송씨는 서울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청소부나 콩나물장수 자녀가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면 화제가 되는 세상, 그러한 부모마저 없어 한없이 서러웠다는 송씨.
『새랑아/이 헌 책상은 이제 너의 것이다/오늘은 이 가난한 아빠가/태어나서 처음으로/메이커 가구 보루네오 책상을 샀단다/그리고 물려주어야 할 눈물이 있단다 새랑아/그때 아빠에게는 옷이 없었다/여름용 나이롱 잠바 하나와 청바지 하나/그것으로 5년을 버티었고 겉옷의 전부였다/그래도 아빠는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았다/책상 하나를 갖고 싶었다/무릎 위에는 스폰지 베개/그 위에다가 베니어 바둑판을 올려놓고서/글을 쓰고 책을 보았단다/아아 책상이 얼마나 커다란 그리움이었던지.』(「아들에게 헌 책상을 물려주며」중)

<지금은 학원강사>
그리고 송씨는 시인이 되었다. 머슴살이하며 쇠죽을 끓이면서까지 책을 놓지 않게 만들었던 것은 시였다. 그의 삶을 한곳에 편안히 매어놓지 못하고 아프게아프게 유전시키다 대학에 들어가게 만든 것은 시였다. 인류의 역사, 그 역사를 이어오며 만들어낸 삶의 지혜, 곧 합리성에 지배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송씨. 비록 막연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수수한 열정일지라도 그 열정을 지키면서 시혼을 불사르다 현실적인 세계가 처절하게 깨어져도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송씨는 그러한 편리들을 시에서 범상치 않게 드러낸다.
이러한 송씨의 시에 대해 『밑바닥 인생의 한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형상화』 『한국시의 전통적 서정을 이어받은 드높은 고전미가 섣부른 독해력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리움의 파문이 불꽃처럼 일렁거리고, 반도체 칩으로 감지한 시혼이 모더니티와 교신한다』는 등 그를 가르친 서울대교수 시인·평론가들은 극찬을 보내고 있다.
송씨는 서울서 대입강사로 이제는 밥 먹고 살만하게 지낸다. 그러나 한밤중 가끔 성산대교로 나간다고 한다. 서울서 바람이 가장 세게 분다는 성산대교. 거기에서 송씨는 황야에서 피 어린 가슴을 바람에 말리는 늑대가 되곤 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혼의 자유와 만나는 시, 그 삶을 위해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송씨는 서울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또 아프게 떠돌지 모른다. 【글 이경철·사진 장충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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