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리더십은 아직도 시험 중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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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본관 태평홀.

오세훈(사진) 서울시장은 부시장 3명과 실.국장 등 30여 명이 배석한 가운데 '천만상상 오아시스 실현회의'를 주재했다. 회사원 정용화(30)씨가 청계광장에 커다란 디스플레이 화면을 갖춘 '청혼의 벽'을 설치해 명소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한강에 투명한 다리를 놓자' '서울광장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자' 등 모두 9건의 시민 제안이 보고됐다.

오 시장은 정씨 제안에 대해 "청계천과 정보기술(IT)이 만난 것으로 참신하다"고 평가한 뒤 8건을 서울시 정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 제안은 대부분 민생과 관련 없는 이벤트성 사업이다. 오 시장은 취임 5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이 부족해 자신만의 브랜드가 없고 공무원들도 장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 이벤트성 사업 많아=지난달 오 시장이 내놓은 '시정운영 4개년 계획'의 차림표는 다양하다. 외국인 관광객 연간 1200만 명 유치, 지역 균형 개발, 한강 명소화, 대기질 개선 등 5개 핵심 프로젝트에 단위사업이 471개나 된다.

그러나 잠수교 차량 통행 금지, 한강 공연 전용 유람선 도입, 남산 야간 조명 설치 등은 이벤트성이 강하고 '총론 없는 각론의 나열'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시의 한 국장은 "한강 프로젝트의 경우 여의도.노량진.용산 등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계획이 미흡하고 감각적인 것들을 모아놓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 시장도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17일 기자들과의 북한산 산행에서 "이러다가 '(내가) 대한민국 오락부장'이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작 중요한 시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청사 건립과 관련해 서울시가 제출한 계획안이 문화재위원회에서 세 번이나 부결됐는데도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이 한 예다. 동대문운동장을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과 세운상가 재개발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점상.세입자 등 이해 당사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위험시설로 기피하는 압축천연가스(CNG) 버스 충전소를 서울시청 별관에 짓겠다는 계획도 소극적 발상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전 시장=청계천 복원'처럼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것도 오 시장의 고민이다. 오 시장의 참모들은 "동대문운동장을 일단 부숴 시민들에게 성과를 보여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지금은 서울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초체력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4년 뒤가 아닌 40년 후 평가받는 시장이 되겠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 언론에 등장하는 대신 조용히 일하겠다고도 했다.

◆ '삐걱거리는' 아이디어 수집=오 시장이 지금까지 가장 잘했다고 자평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시정 쇄신 아이디어를 수집한 '100일 창의서울추진본부' 운영이다. 21일 연 천만상상 오아시스 실현회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시민들이 인터넷 사이트(www.seouloasis.net)에 제안하면 실무 검토를 거쳐 시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10월 16일 사이트를 개통한 뒤 시민의견 1000여 건을 모아 이 중 9건을 실현회의에 올렸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A씨는 "사이트 개통 뒤 팀원들이 매일 한 건씩 아이디어를 올리거나 사이트에 올려진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댓글을 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은 벌여 놓았으니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어 계속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실행해 나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직원들이 업무를 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데 더 신경 쓰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 시 조직 장악 '글쎄'=행정 경험이 없는 오 시장은 취임 직후 "서울시 공무원 조직을 장악할 생각이 없다" "서울시에 들어와서 보니 공무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공무원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격려성 발언이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오 시장이 내놓은 정책과 방향에 반신반의하면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한 과장은 "시장은 4년 임기가 끝나면 떠나가지만 우리는 계속 남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오 시장은 최근 재임(再任)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공무원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8년 동안 서울시를 이끌 테니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다.

또 오 시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서울시가 예산안을 확정한 뒤 시 의회 예산 심의 때 의원들을 동원해 자신의 실.국 예산이 반영되도록 '외곽 때리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오 시장이 국장급 공무원들을 상당 부분 파악했으며 내년 1월 간부 인사를 통해 공무원들의 '성적표'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준봉.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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