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신재생 에너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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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와 고유가 때문에 태양열.풍력.수소에너지.바이오연료 등 신재생 에너지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이 2004년부터 5년간 수소에너지 실용화 연구에 17억 달러(약 1조6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하는 등 주요국들이 신재생 에너지 상용화에 나선 것. 영국에 본사를 둔 거대 에너지 기업 BP만 봐도 이런 흐름은 뚜렷하다. 이 회사의 원래 이름은 '영국 석유(British Petroleum)'. 이를 글로벌화에 맞춰 2000년 그냥 'BP'로 바꿨다. 2004년엔 BP가 '석유 이후(Beyond Petroleum)'를 뜻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신재생 에너지로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이오 연료에 주목=신재생 에너지 중에서도 특히 바이오 디젤, 바이오 에탄올 등은 이미 자동차용 연료로 쓰이며 석유를 일부 대체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는 옥수수.유채 등 식물에서 뽑아낸 것. 연료로 쓸 때 석유보다 오염 물질을 훨씬 덜 뿜을 뿐 아니라 원료인 식물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로 만들어 준다는 이중의 이점이 있다. 이미 프랑스.독일 등은 경유에 바이오 디젤을 20%까지 섞어 쓰도록 하고 있다. 또 미국 중부의 아이오와주 등은 공공기관에서 에탄올 자동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이오 디젤은 경유와 섞어 일반 디젤 승용차에서 쓰고, 바이오 에탄올은 엔진이 다른, 에탄올 자동차에 사용된다.

바이오 연료의 채택에는 미국 몬산토.파이오니어 등 거대 종자 기업의 입김도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에탄올을 많이 뽑아낼 수 있는 특수 옥수수 종자 등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식량과 사료용 종자만 만들면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어 에너지 분야까지 발을 뻗친 것이다. 몬산토 등은 각국 정부를 '환경 보호'라는 명분을 갖추고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도록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올 하반기부터 바이오 디젤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주유소에서 파는 경유에는 0.5% 정도의 바이오 디젤이 섞여 있다. 그러나 바이오 디젤 사용이 우리나라에 큰 이익이라고 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농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원유나 바이오 디젤이나 수입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세금을 뺀 바이오 디젤 공급 가격은 ℓ당 800원 선으로 세전 경유 가격(550원)보다 훨씬 비싸다.

◆수소 에너지=원유를 대체할 강력한 미래 에너지원은 수소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생각한다. 물에서 무한정 뽑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거액을 수소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 수소는 태우고 남는 것이 물뿐인 청정 연료다.

수소가 연료로 쓰일 첫 분야는 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수소로 가는 차를 개발했다. 독일 BMW는 시속 300㎞까지 낼 수 있는 경주용 수소자동차까지 만들었다. BP는 물론 SK㈜. GS칼텍스 등 국내 에너지 회사들도 수소 스테이션 운영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안전'이 문제다. 수소는 폭발성이 있다. 게다가 기체라서 엄청나게 압축해야 연료로 쓸 만한 양을 차에 싣고 다닐 수 있다. 이렇게 압축한 수소를 가둬 두려면 아주 두꺼운 쇠통이 필요하다. 이것을 달면 자동차가 무거워져 수소를 가득 채워도 얼마 달리지 못한다는 문제까지 있다.

최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국내 과학자의 연구 결과다. 서울대 임지순(물리학과) 교수는 플라스틱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쇠 탱크보다 수소를 세 배 정도 많이 넣을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 지난 8월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기초의 기초'. 원리상 그렇다는 것일 뿐 이 물질로 탱크 모양을 만들고, 또 수소를 휘발유.경유처럼 쉽게 차에 넣는 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거기에 아직은 수소가 원유보다 비싸다는 점 등이 겹쳐 수소 상용화는 일러야 15년 뒤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석유를 대체할 날은=태양열.풍력.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는 값이다. 설비 비용이 원유.가스.석탄보다 훨씬 비싸다. 국제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야 신재생 에너지가 석유에 비해 경쟁력을 가진다. 올해 한때 유가가 80달러에 육박했으나 100달러까지 치솟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산유국들이 이렇게 가격이 오르도록 놔두지 않는다. 값이 올라 석유 대신 신재생 에너지를 쓰게 됐다가는 원유를 수출해 먹고 사는 산유국들은 치명타를 입는다. 한편에선 원유 고갈 우려도 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심해 유전 등 새로운 유전이 자꾸 개발되기 때문이다. 1990년 1조 배럴이었던 전 세계 원유 확인 매장량은 계속 원유를 퍼냈음에도 지난해 말 1조2000억 배럴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로 인해 "2050년까지는 석유 에너지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학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가 고민거리다. 대체 에너지 개발에 앞장섰는데 석유에 비해 경제성이 낮아 상용화되지 않으면 기술은 사장되고 만다. 괜히 돈만 버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으면 기술이 뒤처져 지금 원유를 100% 수입하듯 신재생 에너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딜레마다. 이 와중에 "석탄을 눈여겨보라"고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GE 등은 값싼 석탄을 쓰면서도 오염 물질을 별로 뿜지 않는 '석탄 가스화 기술(IGCC)'을 개발했다. 석탄 매장량 세계 1위인 중국도 이런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 석탄 위주로 에너지 체제를 바꿔갈 것임을 올해 발표했다.

◆신재생 에너지='신에너지'와 '재생 에너지'를 합친 말. 석유.가스.석탄.원자력 등 기존의 에너지원과 다른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원과, 식물에서 뽑아낸 기름.알코올 등 고갈되지 않고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재생) 에너지원을 함께 일컫는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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