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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시작의 고통은 기회가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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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무려 2년 넘게 절밥 얻어먹으러 오던 길고양이가 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다. 저도 양심은 있는지 설날 아침에 와서 몇 번 야옹거리고는, 주는 밥 먹고 눈 마주치며 내 말 몇 마디 들어주고 사라졌다. 그 뒤 여태 보지 못했으니 그게 마지막 인사였을까. 흔하디흔한 우리식 표현으로 ‘인연이 다했나 보다.’

요즘엔 인연이 다했나 싶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낡아서 해진 옷을 보다가도 문득 사라진 세월을 느낀다. 오랫동안 해오던 익숙한 일도 고정관념, 열등감, 우월감, 콤플렉스에 떠밀려 살아온 삶을 자꾸만 돌아보게 하고, 익숙한 일도 이젠 그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절밥 30여년에 깨달은 고통의 뜻
지난 실수·상처도 힘이 되는 법
새롭게 시작하는 3월을 맞기를…

라디오 프로그램을 10년쯤 진행했다. 처음엔 매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TV를 겸하며 주말에만 방송했다. 며칠 후면 만으로 꽉 찬 10년이다. 공자님 말씀에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라 하였던가. ‘비록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 군자다.’ 물론 나야 군자는 못되지만, 나이 먹을수록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충실한가에 주로 잣대를 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처럼 별난 인기도 없었고, 방송을 뛰어나게 잘하지도 못해서, 시작한 이래로 서툴렀던 기간 동안 어지간히 고달팠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물 없는 ‘고통바다’라는 뜻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개는 경험은 미천한데 선택의 순간은 너무도 빨리 찾아와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오죽하면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세상, ‘감인토(堪忍土)’라는 의미로 ‘사바세계(娑婆世界)’라 칭하였을까.

사람은 생겨날 때부터 고통의 세계에 머문다. 어머니의 따뜻한 자궁 속을 행복의 근원지로 알고 있지만, 뱃속에서 점점 커질수록 어머니의 장기(臟器)에 눌려 어머니도 아기도 힘들다. 그러다 태어나면 본래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뜻한 양수 속에 있던지라, 제아무리 고운 수건으로 감싸도 가시밭길처럼 온몸이 아프다. 그래서 그리 큰 소리로 울어댔나 보다. 충만한 사랑으로 모두 축복해주지만, 사실 아기가 맨 처음 접하는 세상은 그저 춥고 아플 뿐이다.

자라나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어떤가. 낯선 친구들과 잘 노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의 경우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 가기 싫었고, 세상 모든 일이 하찮게 느껴졌으며, 몸도 아프고 악다구니 받칠 일도 많아 결국 세속을 등지고 출가의 길을 택했다.

낙엽이 흩날리던 어느 늦가을에 머리를 깎았다. 어찌나 머리가 시리던지 온몸이 와들와들 추웠다. 그런 와중에도 어른들은 모자를 못 쓰게 했다. 머리 깎고 모자 써버릇하면 일생 모자를 못 벗는다나. 그러잖아도 머릿속이 ‘배’속처럼 희다고 ‘백골’이라던 나의 민머리는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머리만 깎으면 모든 게 해결되고 행복하다기에 출가했는데, 웬걸 이제 막 시작하는 출가자의 고통은 처음부터 이를 악물게 하였다.

절밥 먹은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알았다. 시작의 고통이 클수록 인생의 밑거름이 충분해진다는 것을, 크게 넘어진 고통은 훗날 위기를 버틸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3월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릴 테고, 적응하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 자신을 먼저 맞이할지도 모른다. 새 학교에서, 생애 첫 직장에서 경쟁과 희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설령 그런 상황에 놓일지라도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내어 내면을 바라보자. 진정한 깨달음은 늘 시간의 다리를 붙잡고 절뚝거리며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상처투성이가 된 다음에야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교토(京都)에 가면 ‘뒤돌아보는 아미타불(みかえり阿弥陀)’이 있다. 수만 번 자신의 명호를 애타게 부르던 불제자를 위해, 아미타불이 높은 단에서 내려와 함께 걸었다는 유래를 가진 불상이다. 말하자면 ‘미카에리 아미타(뒤돌아보는 아미타불)’ 불상에는 중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여운 중생을 뒤돌아본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있다. 그 앞에서 가슴이 뭉클해져 오래도록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나의 아픔과 후회까지도 돌아봐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 시작하는 3월엔 하루도 소홀히 보내지 말자. 솔직하되 불평불만은 조금만 넣어두자. 누구라도 처음엔 다 실수할 수 있는 거니까. 자신을 믿고 살다 보면,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결말이 기다려줄 것이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