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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 경쟁력 입증해야 1위 꿈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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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파운드리 반도체 산업 전망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반도체 산업이 혹한의 불황기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온 초호황이 저물면서 공급과잉의 급류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침체가 특히 심각하다. 서버, 스마트폰, PC 수요 위축으로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이 전 분기보다 26.7% 감소했다. 4분기엔 모든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극심한 불황에도 파운드리는 버텨

한국이 맹추격에 나선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 역시 수요 부진의 충격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4분기엔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도 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를 제외한 대부분 공정에서 매출액이 감소했다. 그런 중에도 TSMC의 4분기 매출액은 평균가격이 높은 5나노 제품의 비중 상승에 힘입어 3분기 대비 1.5% 감소에 그쳤다. 더구나 영업이익률은 52%까지 상승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역시 4분기엔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대만 TSMC 독주하며 굳건한 1위
작년 4분기 영업이익률 52% 기염

2위 삼성, 아직 내부수요 비중 커
2025년 2나노에서 승부 갈릴 듯

첨단 공정 안정적 수율 확보하고
협력사 유대로 생태계 강화해야

같은 반도체 산업이지만 두 산업의 온도 차가 이렇게 극명한 것은 산업의 비즈니스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제품으로서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탄력성이 크다. 불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어서 공급 과잉 시기에는 가격이 급락하는 특성이 있으며, 구매 심리도 가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 반면 주문 생산하는 파운드리 산업은 미리 계약한 가격으로 특정 고객사에 공급하기 때문에 매출액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이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 부족 시기에는 가격이 급등해 천문학적 수익을 누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경기 변동성을 완화하는 차원에서라도 파운드리 산업의 성장이 필요하다.

TSMC와 삼성 파운드리 격차 벌어져

노근창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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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파운드리 산업의 최강자는 TSMC다.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매출액 비중이 상승함에 따라 지난해 3분기에 세계 1위(매출액 기준) 반도체 회사로 등극했고, 4분기엔 삼성전자와의 매출액 격차를 벌렸다. 삼성전자와 인텔의 부진한 올해 상반기 실적을 고려할 때 올해도 매출액 1위 자리는 TSMC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 파운드리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은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 시장에서 TSMC와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다. DB하이텍, 키파운드리 등 8인치 파운드리 기업들도 경쟁력이 상승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 시스템아이씨도 경쟁력이 향상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를 제외한 회사들은 대만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중국 SMIC 등 3위권 이하 업체들과도 여전히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한국 파운드리 산업 성장을 위해선 삼성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TSMC 7나노 이하 시장 90% 점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첨단 공정 시장에서 과연 TSMC에 충분히 위협적일까. 주요 고객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업 관계가 그렇지만, 주문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기업이 공급을 독점하는 구조보다는 다원화된 거래 구조를 통해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10나노 이하 파운드리의 경우 TSMC와 삼성전자만 가능하고, 3나노까지 양산을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TSMC와 삼성전자의 희소성은 더욱 상승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7나노 이하 선단 공정의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과연 양사가 경쟁 상대인지 의심스럽다. 2022년 기준 7나노 이하 시장은 약 4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며, TSMC가 90% 정도를 차지한다. 게다가 삼성 파운드리의 7나노 이하 고객 중에선 내부 고객인 시스템LSI 사업부 비중이 압도적이고, 퀄컴을 제외하고는 외부 고객 비중이 미미한 상황이다. 4나노 전략 제품 경우엔 퀄컴마저 TSMC에 대부분 의존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1987년 설립돼 파운드리 역사를 써온 TSMC에 비하면 삼성파운드리의 역사는 짧다. 단기간에 확실한 2위 자리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삼성파운드리의 저력은 박수와 칭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젠 삼성파운드리 역사도 15년 이상 지난 데다 최근 선단 공정의 고객사 이탈을 고려할 때 마냥 칭찬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냉정하게 파운드리 산업의  경쟁 상황을 평가하면 절대적인 1강, 잠재력이 있는 1중, 다수의 약체로 평가할 수 있겠다. 삼성파운드리가 절대적인 1강에 위협이 될 수 있을 때 한국 파운드리 산업은 양과 질 모두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첨단기술로 가격 낮추면 기회 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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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TSMC 독주의 후유증이 심해지면 삼성에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예컨대 TSMC의 4분기 영업이익률이 52%까지 상승하면서 수요 둔화로 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고객들의 불만이 나타날 수 있고 올해 파운드리 가격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수요 감소로 파운드리 주문을 줄이거나 취소하는 고객들이 있고, 가격 재협상을 추진하는 고객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TSMC가 주요 고객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여전히 비우호적일 경우 장기적으로 삼성 파운드리의 거래처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선단 공정 기반 반도체 칩은 해당 완제품의 성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기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신규 팹리스 고객사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TSMC 대비 기술 경쟁력이 우수한 제품 양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삼성이 지난해 6월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MBCFET GAA(Gate All Around) 공정으로 3나노 양산을 시작한 것은 의미가 크다. 최근 반도체 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성능, 전력 효율성, 단위 면적인데 삼성의 MBCFET 기반 GAA 기술은 기존 기술인 5나노 핀펫 공정보다 속도는 23%, 전력 효율성은 45% 향상하면서 면적은 16% 감소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고객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기술이어서 수율이 의미 있게 개선될 경우 적극적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파운드리는 양산 기술과 함께 생산 수율과 생산 설비 모두 중요한 산업이다. 고객 입장에선 공급 능력이 불안한 파운드리 회사에 핵심 제품의 양산을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과 TSMC의 진검승부는 결국 2나노 제품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TSMC와 삼성 모두 2025년부터 GAA 기반 2나노를 양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3나노와 2나노 양산 제품 수율 및 성능이 양호할 경우 공급선 다원화 요구가 큰 주요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회사) 업체를 신규 거래처로 확대하면서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TSMC가 2나노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할 경우 삼성의 시장 점유율 상승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강력한 1위 업체를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삼성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 1위 되기 위한 세 가지 전제

삼성 파운드리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에도 불구하고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격차가 외려 확대되는 추세여서 단기간에 추월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은 TSMC의 시장 점유율을 위협할 잠재력도 충분히 갖고 있다.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몇 가지의 실행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기술과 수율이다. 특히 GAA기반 3나노 공정에서 전력 사용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주요 고객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첨단 공정에서 지속해서 성능 향상과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한다면 대규모 거래처 수주가 가능해질 수 있다.

둘째 고객과의 상생이다. 파운드리 산업은 고객인 팹리스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산업이다. 고객들의 맞춤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맞춤 충족을 통해 작은 팹리스 기업들이 큰 기업으로 성장할 때 삼성 파운드리도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협력사와의 유대 강화를 통한 생태계 확장이다. 파운드리 산업은 디자인 하우스, 설계 자동화 회사, 후공정 패키징 회사 등이 함께 생태계를 형성한다. 필요하다면 지분 투자를 통해서라도 지속 가능한 유대를 강화하고 협력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필요하다. 범용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가 칩 제조 기술이 제일 중요하다면 맞춤 제품인 파운드리는 칩 회사·협력사·고객사 상호 간의 기술 협업이 중요하다. 기술 수준을 계속 끌어올리고 생태계를 키워나간다면 파운드리 세계 1위의 꿈은 결코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키워드

파운드리(foundry)와 팹리스(fabless)

생산 설비 없이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팹리스, 그 설계도를 받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파운드리다. 독자적으로 칩을 설계하는 애플, 구글 같은 빅 테크도 파운드리의 고객이다.

나노

1나노(㎚·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초미세 단위다. 3나노 공정은 반도체 회로 선폭이 10억분의 3m란 뜻이다.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집적도가 높아져 반도체 성능이 좋아진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