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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韓구조팀 달려갔다…이홍기가 "희숙이" 부르는 그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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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폐허가 된 튀르키예를 도우러 온 한국인들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에서 봉사하는 게 운명처럼 느껴져요.”

지난 6일(현지시간) 발생한 대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튀르키예 하타이주(州)에서 한국 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한국 월드비전)을 도우며 구호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현지인 히랄 수헤다 쿠르트(25, 한국 예명은 히수쿠)의 말이다. 히수쿠는 중앙일보에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취미삼아 배워둔 한국어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 월드비전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 구호 활동에 동참 중인 튀르키예인 히수쿠(가운데). 사진=월드비전 제공

한국 월드비전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 구호 활동에 동참 중인 튀르키예인 히수쿠(가운데). 사진=월드비전 제공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히수쿠는 지난 14일부터 한국 월드비전팀과 함께 서부 도시 아다나와 동부 하타이를 오가며 구호 활동 중이다. 지진 피해가 비교적 작은 아다나에서 긴급 구호 물품을 구매해 하타이의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주된 업무다. 투자 회사에 다니던 히수쿠는 한국 월드비전에서 현지 통역 등 구호 활동 참여를 제안받자 직장을 그만두고 따라 나섰다.

그는 “지진 피해 지역에 한국인과 같이 오게 돼 더욱 뜻 깊다”며 “(한국어를 할 수 있단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히수쿠와 15·17·19일에 걸쳐 전화와 소셜미디어(SNS)로 나눈 일문일답.

한국 월드비전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 구호 활동에 동참 중인 튀르키예인 히수쿠(가운데). 사진=월드비전 제공

한국 월드비전과 함께 지진 피해 지역 구호 활동에 동참 중인 튀르키예인 히수쿠(가운데). 사진=월드비전 제공

지진 피해 지역 상황을 직접 보니 어떤가.  
“하타이주 안타키아에 있다. 지진 전에 이곳에 한번도 와보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 지금은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완전히 무너진 폐허 상태다. 구조대가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를 찾는 사이에 매몰된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생존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가련하고 처참하다. 눈만 마주쳐도 저절로 눈물이 쏟아진다.”
생존자들이 대피할 곳이라도 있나.
“대다수 생존자들은 지진 피해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마을로 대피해 있다. 17일 방문한 마을은 원래 400명이 살던 곳인데 이재민이 몰려와 4000명이 생활하고 있다. 한 가정에 들렀는데, 5인 가족이 지내던 곳에 20명이 북적북적 모여 있었다. 소를 키우던 외양간에서도 이재민들이 쉬고 있었다. 이들에게 구호품을 가져다줘도 부끄러워하면서 선뜻 받질 못한다. (현지인인) 나에게만 살짝 와서 ‘뭐가 들어있나’ 하고 작게 묻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며칠 전까지 자기 집에서 마음 편히 지냈을 사람들이 한순간에 집과 가족을 잃고 비좁은 곳에서 다닥다닥 붙어 지내는 데 얼마나 슬프고 힘들겠는가.”
회사까지 그만두고 구호에 나섰다. 튀르키예에선 이런 일이 흔한가.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아버지는 지진 발생 당일, 생업인 인쇄소 문을 닫고 차를 몰아 12시간 운전해 하타이로 갔다. 튀르키예인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하는데, 내 형제가 집과 가족을 잃고 울고 있는데 내 집이 안전하다고 나만 편안하게 지낼 순 없다고 하셨다. 삼촌 네 분, 사촌동생 네 명도 하타이에서 구조 작업과 이재민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엄마는 이스탄불에서 구호물품을 구매해서 거의 날마다 피해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 아버지는 하타이에서 추운 날씨에 혹사하셔서 몸이 심하게 아파 14일에 이스탄불 집으로 가셨는데, 사흘 쉰 뒤 다시 하타이로 돌아오셨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지진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지방의 지진 피해 상황. 사진=히수쿠 제공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지방의 지진 피해 상황. 사진=히수쿠 제공

한국 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단과는 어떻게 연결됐나.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 중이란 사실을 주변에서 알고 있었다. 한국 월드비전이 구호활동을 도울 현지인을 찾는다는 소식을 알게 된 지인이 나를 추천했고, 월드비전의 제안이 오자 고민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동참했다. 일정 등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곧바로 하겠다고 결정한 거다.”(※한국 월드비전은 14~22일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히수쿠는 전 일정에 동참한다고 한다.)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
“몇 년 전,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다가 관심이 생겨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다. 이후 한국 록밴드 FT아일랜드의 튀르키예 팬사이트 번역 작업에 참여하게 됐고 이런 인연으로 FT아일랜드 튀르키예 팬클럽 회장을 맡게 됐었다. 그때 밴드 보컬 이홍기씨가 일본 팬들을 위해 한국어를 알려주는 영상을 보면서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홍기씨와도 친해졌는데 나를 ‘희숙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재밌게 배운 한국어로, 지진 재난 구호에 참여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  
구호 작업이 힘들진 않나.
“전혀 피곤하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재미있다. 우리를 위해 멀리서 왔다는 게 고맙고 사랑스럽다. 한국인들은 눈도 코도 예쁘다. 슬픔에 잠겨있던 이재민들도 한국 사람들이 다가가면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나에게 슬쩍 ‘저 사람들은 어디서 왔냐’고 묻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형제’라면서 엄청나게 반색한다. 트럭에서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고 나를 때도 재밌는 농담을 하면서 웃겨주니 힘이 들지 않는다. 또 처음 본 튀르키예 사람들과 잠깐 식사라도 같이 하면, 금방 한국어로 이름을 지어주면서 재밌게 해준다. 나의 한국 이름 ‘희숙이’를 듣더니 ‘요즘 스타일로 바꿔주겠다’고 했는데 기대가 된다.”
한국 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팀이 구호품을 마련해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이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사진=월드비전 제공

한국 월드비전 긴급구호대응팀이 구호품을 마련해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이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사진=월드비전 제공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구호품은 뭔가.
“남아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모든 게 필요한 상태다. 먹을 것, 식수는 물론이고 청소 도구도 많이 요청한다. 밤 날씨가 아직 많이 추워서 핫팩이나 외투,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속옷도 많이 필요하다.”(※한국 월드비전은 “현지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어 물자를 실어나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물건 자체보다 정부나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구호품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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