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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에 맞아 얼굴 멍들어도 "놔두죠"…대선 뜬 튀르키예 간디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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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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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튀르키예의 간디’가 종신 집권을 노리는 ‘21세기 술탄’을 밀어내고 20년 만에 튀르키예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오는 5월14일 치러지는 튀르키예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에 맞설 야당 연합의 단일 후보로 ‘교과서같은 인물’이라 불리는 케말 클르츠다로울루(74)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6일(현지시간) 추대됐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CHP 대표가 6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야권의 대선 단일 후보로 선출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CHP 대표가 6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야권의 대선 단일 후보로 선출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블룸버그통신과 BBC방송·가디언·유로뉴스 등은 튀르키예의 6개 야당 연합이 수일간의 난상토론과 막판 4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가까스로 클르츠다로울루를 단일 후보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분열된 튀르키예의 야당이 대선을 앞두고 힘을 합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에르도안의 20년 집권을 종식할 최고의 기회를 맞았다”고 전했다. 대지진이라는 메가톤급 재앙을 만나 정치 인생 최대 시험대에 오른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야당 단일 후보’라는 또 다른 악재가 겹친 셈이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총 사망자 수는 5만1000명을 넘어섰고 재산 피해도 양국 합쳐 약 393억 달러(약 5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클르츠다로울루는 단일 후보로 결정된 직후 지지자들을 향해 “나는 단순한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튀르키예의 평화와 번영·정의를 위한 후보”라면서 “선거 승리 이상의 것을 위해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국민에게 빼앗아간 것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나는 국민 여러분 모두의 후보이며, 우리 모두 같이 시작하자”고 지지를 호소했다. 지지자들은 “우리의 대통령, 클르츠다로울루”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의 지지자들은 그가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되자 거리에서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의 지지자들은 그가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되자 거리에서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차분한 온화함이 경쟁력”

공무원·경제학자 출신인 클르츠다로울루는 평소 조용하고 온화한 말투에 합의를 중시하는 태도로, ‘간디 케말’ ‘튀르키예의 간디’란 별명으로 불려 왔다. 불같은 성미에 권위주의적 성향, 아마추어 축구선수 출신으로 ‘21세기 술탄’이라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튀르키예 일각에선 클르츠다로울루에 대해 “책을 좋아하는 얌전한 인물로, (정치인다운) 흡인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차분함과 온화함이 곧 그의 경쟁력이란 분석도 있다. 2019년 수도 앙카라 추북 지역에서 반대세력에 린치를 당해 온 얼굴에 멍이 든 채로 당 관계자들에게 차를 대접하며 “일을 확대하지 말라”며 차분히 달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앙카라의 린치 사건 외에도 흑해 지역 순방 도중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무장 공격, 튀르키예 대의회에서 주먹 폭행, ‘정의를 위한 행진’ 도중 이슬람국가(ISIS)의 폭탄 공격 등을 당했다. CHP 관계자는 “클르츠다로울루는 튀르키예 정치 역사상 가장 여러 그룹으로부터, 가장 많은 물리적 공격과 암살 시도를 겪은 정치인”이라며 “어떤 순간에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으며, 항상 평온하고 침착하다”고 전했다.

클르츠다로울루는 1948년 튀르키예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외딴 마을 툰젤리에서 토지 등기소 직원인 아버지에게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초년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워 여름엔 구멍이 숭숭 뚫린 옷을 입고 맨발로 학교에 다녔으며 7남매 중 유일하게 글을 읽을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고, 고교 수석 졸업 뒤 앙카라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1년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관료의 길에 들어섰고 특유의 침착함과 꼼꼼함으로 ‘올해의 관료’에 선정되는 등 엘리트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가운데)가 에크렘 이마모글루 이스탄불 시장, 만수르 야바스 앙카라 시장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가운데)가 에크렘 이마모글루 이스탄불 시장, 만수르 야바스 앙카라 시장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당 분위기 바꿔 개방적 중도좌파로

정계에 입문한 건 1999년이다. 2002년 총선에서 이스탄불 대의원으로 의회에 입성한 뒤 2007년 총선에선 이스탄불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클르츠다로울루는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패 공무원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CHP의 반(反)부패 운동가’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2009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이듬해 CHP의 당 대표가 불법 스캔들로 인해 사임하자 만장일치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가 당 대표를 맡으면서 세속주의적이고 경직됐던 CHP가 민주적이고 개방적 성향의 중도좌파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클르츠다로울루는 평소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건 18세기식 뒤떨어진 이념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지지층을 확장해왔다.

클르츠다로울루는 대지진으로 흔들린 민심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지진 직후부터 정부를 향해 지진세의 용처를 물으며 “에르도안 정부는 지난 20년간 지진 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에르도안”이라며 공격 수위를 높였다. 지난달엔 CHP 의원들의 급여를 모아 지진 피해자를 위해 구호 자금으로 기부하는 등 정부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의회주의’ 부활 공약…여론조사선 밀려

튀르키예는 지난 20년간 에르도안 치하에서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로 변모했다. 미국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16년 실패로 돌아간 튀르키예의 쿠데타 시도 이후 반대론자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 통치가 한층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클르츠다로울루는 자신이 당선되면 의회주의 체제로 되돌려놓겠다고 공약했다. 또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중앙은행을 자율적 조직으로 복귀시키겠다고도 약속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대형 포스터앞에 비둘기들이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대형 포스터앞에 비둘기들이 날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여론조사에선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세다. 여론조사 업체 아레다서베이가 지난달 23~27일 튀르키예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에르도안 지지율은 49.8%로 클르츠다로울루(21%)보다 배 이상 높았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야권 대선주자들과의 가상 대결에서 대부분 뒤지는 결과가 나왔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정당 지지율 역시 에르도안 대통령이 속한 정의개발당(AKP)이 38.5%로 1위였고 CHP(22.8%)는 2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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