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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198시간 만에 기적 생환에도…"이제 마무리 수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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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3일(현지시간) 3만7000명을 넘어섰다. 지진 발생 일주일이 넘어선 시점에도 기적의 생환 소식은 이어지고 있지만, 구호 단체들은 매몰된 이들에 대한 수색·구조 작업을 순차적으로 마무리하고 생존자 돌봄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가족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는 아이들. AFP=연합뉴스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가족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는 아이들. AFP=연합뉴스

이날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튀르키예 사망자 수를 3만1643명으로 집계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는 정부 관할 지역과 반군 장악 지역을 합해 최소 5714명이 숨졌다. 양국 공식 사망자 수가 3만7357명으로,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약 7만3000명 사망)에 이어 21세기 들어 6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198시간 만에 3명 생환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72시간)을 이미 훌쩍 넘긴 시점이지만 기적의 생환 소식은 이어졌다. CNN 튀르크는 14일 튀르키예 남부 아디야주(州) 건물 잔해에서 18세 소년 무함메드 카페르 세틴이 지진 발생 198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남부 아디야만에서 생존한 18세 소년 무함메드 카페르 세틴이 198시간 만에 구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 남부 아디야만에서 생존한 18세 소년 무함메드 카페르 세틴이 198시간 만에 구조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지 언론이 공개한 영상에는 구조대원들이 두 형제를 들것에 실어 나르는 모습이 담겼다. 구조대원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포옹하고 환호했다.

같은 시간 카라만마라슈주에서도 두 형제가 무너진 건물 밖으로 나왔다. 10세 소녀 아이카 세플린은 185시간만에 구조됐다. 카라만마라슈는 이번 지진의 2차 진앙지(규모 7.5)로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 중 하나다.

하타이주에선 67세 남성 후세인 베르베르가 183시간 만에, 13세 소년 칸이 182시간 만에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서 구조됐다. 튀르키예 언론 하베르7은 카라만마라슈의 건물 잔해 속에 갇힌 신생아와 그의 어머니, 할머니 등 가족 3명의 생존을 확인하고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세계 80개국에서 온 9247명의 구호 인력이 수색과 구조 활동을 돕고 있다. 한국의 긴급구호대는 이날까지 총 8명의 생존자를 구조했으며 시신 18구를 수습했다.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구조대원들이 생존자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구조대원들이 생존자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진 발생 9일 이후 생존율, 제로에 가까워”

이처럼 생환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몰자의 생존 가능성은 작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인 프로젝트호프의 크리스 스코펙 부회장은 “잔해에 매몰될 때 사람들이 며칠 동안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8일째에 가까워지면 지진 피해 생존자를 구조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고 말했다.

에두아르노 레이노소 멕시코국립자치대 공학연구소 교수도 AP통신에 “잔해에 갇힌 사람의 생존 가능성은 5일이 지나면 매우 작아지고, 9일 이후엔 제로(0)에 가깝다”면서 “현 시점에서 생존자가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알렉산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도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구해낼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구호 요원들은 구조의 초점을 ‘매몰자 구출’에서 ‘생존자 보호’로 돌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날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은 시리아 알레포를 방문해 “잔해 속에서 희생자와 생존자를 찾아 끌어내는 방식의 구조는 이제 마무리 수순”이라면서 “구호의 초점은 생존자들에게 음식과 거처, 교육, 심리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구조 작업이 실제로 중단됐다. AFP통신은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의 7개 지역에서 매몰자 구출 작업이 중단되고 생존자 후속 지원에 구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하타이 지역의 붕괴된 건물 옆에 진열된 시신 가방. AFP=연합뉴스

튀르키예 하타이 지역의 붕괴된 건물 옆에 진열된 시신 가방. AFP=연합뉴스

영하 추위 속 노숙하는 이재민

시급한 건 이재민을 위한 거처다. 유엔은 이번 지진으로 시리아에서 약 530만 명이 집을 잃고 노숙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NYT는 튀르키예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재민들은 현재 구호대가 나눠준 텐트와 임시로 마련된 대피소는 물론 공원과 이슬람 사원 안뜰, 인도 등을 가득 채우고 있다. NYT는 “무너진 건물, 금이 가고 불안정한 건물을 제외한 모든 장소가 이재민으로 붐비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자갈을 긁어모아 바닥을 고른 뒤 널빤지를 세우고 방수포를 덮어 임시 거처로 삼고 있다.

음식과 옷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카라만마라슈에 거주하는 자이넵 오맥(38)은 지진 당일 부인과 9살, 14살 두 아이와 잠옷 바람으로 아파트를 뛰쳐나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 지역 날씨가 최근 영하 6도 안팎으로 떨어지자 모닥불을 피우며 추위를 쫓고 있다. 오맥은 “식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옷가지는 붕괴된 건물 잔해에서 주워왔지만 변변한 게 없다”고 NYT에 전했다.

튀르키예 남동부 엘비스탄에서 시리아 난민이 불을 쬐며 울고 있다. AP=연합뉴스

튀르키예 남동부 엘비스탄에서 시리아 난민이 불을 쬐며 울고 있다. AP=연합뉴스

옴·설사·코로나·콜레라 위험 가중 

추위와 배고픔, 열악한 위생상태 탓에 전염병도 확산되고 있다. 튀르키예 현지 언론은 남부 아디야만에서 성인들에겐 전염성이 매우 강한 피부병인 옴이 발생했고 어린이들은 설사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재난 지역에 백신이 공급되고 있지만,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전역에 4200만 달러(약 532억 원) 이상의 의료 원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시리아 상황은 튀르키예보다 심각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리아 북서부 반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주(州)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내전 상황에서 정부군에 대항하는 이들의 ‘최후의 피난처’로 여겨진 이들리브는 반군 지역인 탓에 구호 물품 전달이 늦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으로 들어온 구호물품 트럭은 52대뿐이다.

튀르키예 남동부 안타키아의 대피소에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와 노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튀르키예 남동부 안타키아의 대피소에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와 노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진으로 상수도가 파괴되면서 수질이 악화돼 콜레라 확산도 우려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8일 유엔은 시리아 북서부 내 210만 명이 콜레라 감염 위험에 처해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후세인 바사르주(州) 보건부 장관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도 이곳 의료 시스템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공격, 코로나19 확산으로 붕괴 직전이었다”면서 “지진으로 부상자를 치료할 기본적인 의약품까지 떨어지면서 삼중고에 시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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