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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구조대가 해낸 '기적 생환'…골든타임 지나도 희망 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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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튀르키예(터키)의 강진 피해 지역으로 급파된 한국의 긴급 구호대가 9일(현지시간) 오전, 활동 개시 1시간 30여분 만에 70대 생존자 1명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이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난 지 나흘만의 일이다.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72시간)’이 지난 시점에 이뤄진 구조로, 추가 생환에 대한 희망을 안겼다.

한국 구호대, 70대 남성 첫 구조  

한국 긴급구호대가 9일(현지시간) 오전 튀르키예 하타이주에서 건물 잔해에 갇혀있던 70대 중반 남성을 구조했다. 사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제공

한국 긴급구호대가 9일(현지시간) 오전 튀르키예 하타이주에서 건물 잔해에 갇혀있던 70대 중반 남성을 구조했다. 사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제공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한국 긴급구호대는 하타이주(州) 안타키아의 고등학교 등지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6시30분께 70대 중반 남성 1명을 찾아내 구조했다. 지진 발생 74시간 만이다. 이어 오전 10시께 무너진 5층 건물 잔해에서 마흐메트(40)와 딸 루즈(2), 손가락 골절을 입은 여성 라와(35) 등을 추가로 구출했다. 이들은 지진으로 고립된 지 78시간 만에 구조돼 탈수 증상을 보였으나, 의식은 또렷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튀르키예 지진 발생 지역은 9일 오전 4시를 기점으로 지진 발생 72시간, 즉 인명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나간 상태다. 하지만 극적인 구조 소식이 잇따르며 현지에선 생존자가 더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 국영 아나톨루 통신은 자국 구조대가 남동부 도시 가지안테프의 중심지 건물 잔해에서 지진 발생 76시간 만에 3명을 구조했다고 전했다. 생존자의 이름은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 가족으로 보인다고 매체는 전했다. 가지안테프는 이번 강진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여진 등으로 큰 피해를 입은 카라만마라슈주(州)에서도 극적인 구조가 이어졌다. 7층 아파트가 무너져내린 잔해 속에선 알리 바기스(55)와 그의 아내 젤랄 바기스(40), 딸 미르 베르잔 바기스(5) 등 3명이 73시간 만에 구조됐다.

구조 작업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일가족이 모두 무사히 밖으로 나오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젤랄은 “반드시 구조될 거라고 믿었다”며 “이렇게 대단한 구조대의 활동에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임신 9개월째인 헤네 함메코(35)는 14세 아들과 함께 지진 발생 70시간 만에 구조됐다. 태아와 함메코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5세 부부와 2세·4세 아이 등 4인 가족은 64시간 만에, 84세의 노인은 62시간 만에 각각 구출됐다. 구조 활동에 참여한 튀르키예 광부들이 65시간 만에 엄마와 함께 있던 4세 딸 멜리사를 구해냈다.

지난 8일 지진 피해가 큰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주에서 한 남성이 18개월 된 딸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이 아기는 엄마 모유를 먹고 이틀 넘게 버텨 55시간 만에 구조됐다. 사진 아나돌루 통신 홈페이지 캡처

지난 8일 지진 피해가 큰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주에서 한 남성이 18개월 된 딸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이 아기는 엄마 모유를 먹고 이틀 넘게 버텨 55시간 만에 구조됐다. 사진 아나돌루 통신 홈페이지 캡처

옐리즈 키라카칼리(23)는 18개월 난 딸 마살과 아파트 잔해에 묻혀 있다 56시간 만에 구조됐다. 옐리즈는 “마살에게 모유 수유를 하며 버텼다”고 전했다. 옐리즈의 남편 오메르 키라카칼리는 지진 직후 건물 잔해를 헤치고 스스로 빠져 나온 상태였다. 그는 어린 딸이 구조되자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빠의 품에 안긴 마살은 손과 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타이에선 5세 여아 엘라가 54시간 만에 구조됐다. 엘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얼굴로 자신을 들어올린 구조대원에게“나는 매우 무거워요”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골든타임 지나도 희망 있어

골든타임은 재난 발생 후 3일 이내에 생존자의 90%가 구조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일란 켈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재난보건 교수는 “3일 이후부턴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대지진의 피해 지역인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영하의 기온에 눈·비 등이 내리는 등 기상 상황이 열악하다. 켈만 교수는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들은 저체온증 등이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응급·재난 의학 전문가 재론 리는 "드물긴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일주일을 훌쩍 넘겨 생환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구조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생존 가능 기간은 나이·육체·정신적 상태와 공기 유무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아이티 강진에선 28세 남성이 지진 발생 27일 만에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 구조 당시 그의 몸무게는 13.5㎏으로, 가슴·팔·다리뼈가 다 드러난 앙상한 상태였다. 탈수와 영양실조가 심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손으로 파헤쳐 구조…보호 장갑 필요

구조대원과 일반인들이 지난 8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구조대원과 일반인들이 지난 8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 각지에서 국제 구호대가 튀르키예 지진 현장으로 합류하면서 곳곳에서 구조·수색 작업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튀르키예 당국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65개국에서 구조 인력 수천 명을 지진 피해 현장에 급파했다.

BBC에 따르면 영국 구조대는 건물 잔해 아래 갇혀 있던 60세 여성을 구했다. 한 구조대원은 "살바란 이름의 이 여성은 음식이나 물 없이 3일하고도 반나절을 살아남았다"며 "그는 구조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은 알제리 구조대가 건물 잔해에서 5세 소녀를 극적으로 구조했다고 전했다.

국제 구호대는 굴착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잔해를 치우고, 전문 음향 장비·이산화탄소 감지기·열상장비 등을 동원해 생존자를 찾고 있다. 또 후각이 발달한 수색견을 투입해 작업 효율을 높이고 있다.

다만 생존자가 발견되면 중장비 가동을 멈추고, 구조대가 직접 손으로 잔해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구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시간이 더뎌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현지인들이 맨손으로 얼어붙은 건물 잔해를 일일이 걷어내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의 한 주민은 “구조 현장엔 많은 인력과, 그들의 손을 보호할 장갑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 6일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를 강타한 강진으로 9일까지 최소 1만700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6만 명에 육박한다고 CNN이 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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