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너지 수십억 아꼈어요"…마트의 한수, 냉장고 냉기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신년기획 - 비싼 에너지 시대, 에너지 과소비 스톱 <2>

지난달 16일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 내 밀키트 진열 냉장고에 문이 달려있다. 개방형으로 된 일반적인 마트와는 다른 풍경으로 에너지 비용 절감 등을 위한 장치다. 정종훈 기자

지난달 16일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 내 밀키트 진열 냉장고에 문이 달려있다. 개방형으로 된 일반적인 마트와는 다른 풍경으로 에너지 비용 절감 등을 위한 장치다. 정종훈 기자

# 지난달 16일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 우유·두부·밀키트 등이 진열된 냉장고에 손으로 여닫아야 하는 투명 문이 달려있었다. 손님들이 상품을 쉽게 집어갈 수 있도록 개방형 냉장고를 설치해 놓은 다른 마트와는 다른 모습이다. 롯데마트는 한국전력의 지원을 받아 이 점포에서 신선식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개방형 냉장고에 냉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투명 문을 달았다. 설치비만 1억원 넘게 들었다.

하지만 효과도 즉각적이었다. 냉장 장치를 덜 돌려도 되니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는 데다, 온도가 잘 유지돼 폐기되는 상품도 줄었다고 한다. 이철민 롯데마트 안전관리부문장은 "고객들도 거부감을 보이기보다는 진열 식품이 더 신선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봐 준다"면서 "에너지 비용을 아낀 만큼 이익도 늘어 마트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서울 성내 2차 e-편한세상 지하주차장 내에 LED 조명이 켜져 있다. 아파트 차원의 투자로 오래 된 형광등을 고효율 LED로 교체하면서 조도는 높아지고 소모 전력은 줄였다. 정종훈 기자

지난달 13일 서울 성내 2차 e-편한세상 지하주차장 내에 LED 조명이 켜져 있다. 아파트 차원의 투자로 오래 된 형광등을 고효율 LED로 교체하면서 조도는 높아지고 소모 전력은 줄였다. 정종훈 기자

# 지난달 13일 서울 강동구의 성내 2차 e-편한세상 지하주차장. 막 들어섰을 땐 전등 조도가 낮아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움직임이 감지되자 주변 조명이 확 밝아졌다. 사람이 지나간 뒤 조명은 곧 다시 어두워졌다. 151세대인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100개 넘는 오래된 주차장 형광등을 모두 고효율 LED로 교체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였지만, 전기요금 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커 5년 뒤면 투자비를 모두 뽑을 것이란 예상이다. 요즘처럼 전기료가 많이 오르면 회수 예상 시점도 그만큼 빨라진다. 김경혁 관리사무소장은 "조명을 바꾼 뒤 주민들도 주차장이 한층 밝아지고 이용하기도 편해졌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난방비 폭탄 다음은 전기료…에너지 다이어트 '필수'

3일 서울 시내의 한 빌라 우편함에 1월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시내의 한 빌라 우편함에 1월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본격화한 에너지 위기의 후폭풍은 연초 '난방비 폭탄' 고지서로 돌아왔다. 가스 요금은 1년 새 약 38% 올랐다. 문제는 폭탄 요금이 난방비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올 1분기부터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올랐다. 1981년 이후 최고 인상 폭이다.

당장 1월 요금부터 오른 요금이 적용된다. 하지만 충격의 강도는 기업과 가구마다 차이가 있다. 일찌감치 '에너지 군살 빼기'에 나선 기업과 아파트 단지 등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기기 효율화 나선 중기 "준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 

지난달 16일 경기 화성의 뿌리기업인 상원 공장 내 사출 기계 모습. 따로 인버터(오른쪽 하단)를 설치해 모터 가동에 따른 에너지 소비를 줄였다. 이 기업은 공장 내 모든 기계를 고효율로 바꿨다. 화성=정종훈 기자

지난달 16일 경기 화성의 뿌리기업인 상원 공장 내 사출 기계 모습. 따로 인버터(오른쪽 하단)를 설치해 모터 가동에 따른 에너지 소비를 줄였다. 이 기업은 공장 내 모든 기계를 고효율로 바꿨다. 화성=정종훈 기자

경기 화성시에 있는 사출 전문 중소기업 상원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16일 찾은 이 업체의 공장 곳곳에선 전기 효율을 높여주는 인버터 장치가 눈에 띄었다. 공정에 필요할 때만 모터가 돌고, 그렇지 않을 때는 멈추는 방식의 기기다. 상원은 8년 전부터 공장 기계 24대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해왔다. 지난해 모든 기기를 고효율로 바꿨고, 월 7000만원가량 나오던 전기료도 30% 이상 줄었다.

이형주 상원 대표는 "유압모터를 쓰는 사출 공장은 전기요금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자금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효율화에 투자했다"면서 "전기료도 계속 올라가는데 미리 준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 내 유제품 진열용 냉장고 하단에 붙어있는 안내문. 에너지 절약과 신선도 유지 차원에서 문을 닫아달라는 부탁이 담겼다. 정종훈 기자

지난달 16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점 내 유제품 진열용 냉장고 하단에 붙어있는 안내문. 에너지 절약과 신선도 유지 차원에서 문을 닫아달라는 부탁이 담겼다. 정종훈 기자

대기업도 생존을 위한 다이어트에 뛰어든 건 마찬가지다. 롯데마트는 냉·난방, 조명 등에 들어가는 전기료만 지난해 800억원 넘게 나왔다. 전기료 인상은 곧 영업이익 등 실적에 직격탄이 된다.

이 때문에 2009년부터 마트 조명을 전력 소모가 적은 LED로 바꾸고, 2015년께 무빙워크 속도도 늦추는 등 에너지 절약에 일찍이 나섰다. 올여름까지 전국 모든 마트에 진열용 냉장고 문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철민 부문장은 "올해는 에너지 비용이 더 올라 900억원 이상 나올 듯하다. 그나마 냉장고 문 달기 같은 효율 향상으로 연간 수십억원을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파트선 에너지 캐시백 활용…"전기 코드 뽑고 외출"

늘어나는 요금 부담에 에너지 다이어트에 나서는 가구도 늘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전기를 덜 쓴 만큼 현금으로 돌려주는 '에너지 캐시백'엔 지난해 기준 약 4만1000여곳(아파트단지·개별세대)이 참여했다.

지난달 13일 대구 태전휴먼시아 1단지 내 게시판에 걸린 에너지 캐시백 안내문. 대구=서지원 기자

지난달 13일 대구 태전휴먼시아 1단지 내 게시판에 걸린 에너지 캐시백 안내문. 대구=서지원 기자

주택관리공단 대구 태전휴먼시아 1단지는 지난해 7월 에너지 캐시백에 참여한 뒤 단지 내 전력 사용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연말까지 총 8만kWh 넘게 절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파트 주민 김모(58)씨는 "관리실에서 꾸준히 홍보한 덕분에 에너지 캐시백 제도와 친숙하다"면서 "외출할 때 전기 코드를 다 뽑고 나가는 등 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시범 사업 중인 '에너지 공급자 효율 향상 의무화 제도'(EERS)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전·가스공사 등 에너지공급자에 판매량과 비례하는 절감 목표를 부여해 효율화 투자와 지원을 유도하는 제도다. 현장에서는 특히 중소기업 등에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원의 이형주 대표는 "주변 영세 업체들도 에너지 효율 개선에 관심은 있지만 비용 부담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전 등의 지원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텐데 몰라서 못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설비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여기에 중소기업서 만든 고효율 기기를 쓰면 산업적으로도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비싼 에너지 시대, 에너지 과소비 스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