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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찍힐라' 눈감았다…해외자원 개발, 한국은 11% 일본 40% [신년기획 - 에너지 과소비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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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구리·코발트 등 광물 가격도 마찬가지다. 비단 에너지 수급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젠 안보 차원에서 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국제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79달러다. 지난해 한때 120달러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떨어졌지만, 2021년(평균 69달러)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다. 같은 날 미국 선물시장에서 천연가스는 100만BTU당 4.5달러에 거래됐다. 고점에선 떨어졌지만, 1~2달러를 오가던 2019~2020년보다 배 이상 높다. 정부는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연평균 88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높은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변수는 크게 두 가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국의 방역 완화다. 러시아 전쟁이 이어질수록 특히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높은 가격 수준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량은 전 세계의 25%(2020년 기준‧대외경제정책연구원)를 차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봉쇄를 취하고 있는 중국이 방역을 완화하면서 개방할 경우 석유‧가스 수요 급증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유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정제하는 시설은 이제 더는 늘어나지 않는다”며 “휘발유‧디젤‧항공유 공급이 더는 늘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석유 원료를 당장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에 가격이 꽤 오래 이 수준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러시아 전쟁 이전부터 환경 규제 흐름으로 에너지 가격 인상 조짐이 있었다”며 “이 상황에서 중국 방역 완화가 본격화하면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전망이 어두운데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은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유‧가스 개발을 위한 투자가 저조해서다. 해외 자원개발은 ‘적폐’라는 낙인 속에 2012년 이후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2년까지 250건의 석유‧가스 자원개발이 이뤄졌는데 이후 2021년까지는 29건에 불과하다. 자원개발률은 2015년(16%) 고점을 찍은 뒤부터 떨어져 2021년엔 11%에 불과했다. 국내 석유‧가스 사용량 중 자원개발을 통해 조달하는 비율이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호주 프렐류드 사업 FLNG(해상 부유식 액화플랜트). [사진 한국가스공사]

호주 프렐류드 사업 FLNG(해상 부유식 액화플랜트). [사진 한국가스공사]

자원개발을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한 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가가 이뤄지면서 단기적 관점에서 판단한 탓이다. MB정부 때 지분을 투자한 호주 프렐류드 가스전은 2020년까지 적자를 내며 '혈세 낭비'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2021년부터 흑자를 내며 '복덩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앞서 가스 생산이 늦어진 데다 이익이 나지 않아 비판이 일었지만, 러시아 전쟁 영향으로 천연가스 수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으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자원개발 노력은 계속하고 있는데 최근엔 민간에서 개발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원자재를 수입하고, 이를 가공해 수출한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년기획 - 에너지 과소비 스톱

일본은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이 2020년에 40%를 넘었다. 일본은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독립된 위원회로 설치해 운영 중이다.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자원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JOGMEC가 민간의 출자‧채무보증과 외국과의 외교적 네트워킹을 돕고, 미쓰비시 등 상사를 운영하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자원개발에 나서는 구조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자원확보는 이제 국가경쟁력이 된 지 오래고, 자원개발률을 높이지 않으면 경제 불안정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해외와 네트워킹이 가능한 인력이 최근 10년간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를 복원하려면 다시 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정부는 자원개발을 민간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정부‧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이 협업하는 구조로 나가야 한다. 일본처럼 가스와 석유‧광물 등 개발을 총괄하는 조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홍종 교수는 “자원개발은 실패가 많은 작업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개를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 지켜보는 게 꼭 필요하다”며 “공기업에 모든 걸 맡길 수는 없다. 필요할 땐 해외에 뇌물을 제공하는 식으로라도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유연한 행동이 가능한 민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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