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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의 유대인' 원저우 출신들 일냈다...프라토 살린 '차이나타운'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 프라토 차이나타운에서 사람들이 새해를 기념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이탈리아 프라토 차이나타운에서 사람들이 새해를 기념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전 세계 대부분의 차이나타운은 역사가 오래됐다. 역사상 최초의 차이나타운으로 언급되는 필리핀 마닐라의 비논도 차이나타운이 1594년 들어섰으니 429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에선 임진왜란(1592~1598년)이 한창이던 조선 선조(재위 1567~1608년) 때의 일이다. 유서 깊은 태국 방콕의 차이나타운은 1782년에 생겼으니 24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북미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48년 자리 잡았으니 175년이나 됐다. 뉴욕 차이나타운도 1870년에 세워졌으니 153년의 세월을 거쳤다. 일본의 중화요리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요코하마(横浜) 차이나타운도 1859년 항구가 개방되면서 몰려든 중국인이 세워 164년이 지났다.

차이나타운은 100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로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겪었다. 그동안에 화교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가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지에 자리 잡았다. 화교 주민들은 무역업이나 상업, 요식업 등 다양한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뤘다.

통상 차이나타운은 입구에 커다란 패루(牌樓)가 세워져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으로 번성하면서 더욱 크고 장식 또한 많은 것으로 바뀐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관우를 모신 관제묘(關帝廟)、도교와 관련이 있는 마조묘(媽祖廟) 등 고풍스러운 중국 민간신앙 시설이 차이나타운의 중심을 차지한다. 전통의 중화학교와 중화요리점, 중화 물품 가게가 이어진다. 손때 묻은 차이나타운의 모습은 오랜 세월 이를 가꿔온 이주민과 그 후손들의 역사를 상징한다.

반면 지극히 최근에 들어선 차이나타운도 있다. 개혁‧개방 이후 글로벌화 바람을 타고 해외에 이주해서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에 있는 프라토다. 르네상스 초기인 14세기에 들어선 프라토는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의 중심부에서 20㎞ 정도 떨어진 소도시다. 피렌체의 교외로 봐도 된다. 한국의 동두천이나 하남시 정도 되는 97.35㎢의 면적에 2022년 7월 기준 20만 인구가 거주한다.

소도시 프라토에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있는 대도시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둘째로 많은 중국인이 거주한다. 중국인의 프라토 이주는 규모에서는 물론이고 발전 속도 면에서도 괄목할 만하다. 2008년 12월 프라토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중국인은 9927명이었는데, 2011년 지역 당국은 이 도시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합법‧비합법 거주자를 포함해 4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초고속 성장이다.

BBC 등에 따르면 이 도시에 중국인이 처음 온 것은 1990년대 초다. 초기 이주민의 대부분은 당시 이 도시에 약 3500개가 있는 의류 작업장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하청 노동자가 왔지만 뒤이어 사업가들이 이 도시를 찾았다. 중국인 사업가들은 이곳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기업이 중국 노동자의 손으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단 이탈리아 브랜드의 의류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했다. 기막힌 상술이다. 하청보다 훨씬 이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하루 14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 등으로 명품 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중국 등에 하청을 주는 것을 자제하자 아예 이탈리아 현지 생산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프라토 서부에서 ‘산토 베이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작된 차이나타운은 팽창을 거듭해 도시 중심지까지 확대됐다, 지역 당국은 2008년까지 3100개의 중국인 사업장이 들어선 것으로 파악했다. 대부분의 중국인 사업장은 프라토시가 마련한 ‘마크롤로토 이 욜로’ 인더스트리얼 파크에 자리 잡았다. 시 당국은 업체를 유치했고, 여려 혜택을 보고 중국 사업장이 이 도시에 자리 잡았다.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2009년 프라토에서 일하는 합법적인 중국인 노동자는 3만 명에 이르렀는데, 지역 당국은 비슷한 숫자의 불법 이민자들이 함께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6만 명의 중국인이 이 도시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다.

2010년이 되자 임금이 낮은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사업장이 잘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2011~2012년 두 해 동안 약 2만 명을 고용하던 4000여 개의 사업장이 문을 닫을 정도로 프라토의 경제가 좋지 않았지만, 중국인 사업장이 이를 벌충했다. 프라토는 2013년 실업률이 7%로 전국 평균 11%보다 낮았다. 지역 상공회의소는 중국인들이 하는 섬유 비즈니스 덕분에 프라토의 지역 경제 사정이 이탈리아의 다른 곳보다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프라토에 정착한 중국인은 뛰어난 상술과 진취적인 해외 진출로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지난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이 대부분이다. 일부는 프랑스 파리의 차이나타운에서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이웃 나라인 이탈리아로 넘어온 중국인이다. 사실 프라토는 물론 이탈리아에 이민 간 중국인의 90% 이상이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이다.

중국인 이민자들은 이탈리아에서 공장·가게를 운영하며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유럽 온라인 통계포탈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코로나19가 터지기 한해 전인 2019년 1월 기준 29만 9800명의 중국인이 이주했다. 이탈리아의 중국인은 루마니아(120만)·알바니아(44만)·모로코(42만) 다음가는 대규모 이주민 집단을 형성한다.

BBC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이탈리아 최대 차이나타운이 있는 패션 도시 밀라노에 이어 섬유도시인 토스카나 주 프라토에 가장 많이 몰려 산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프라토의 중국인들이 저가 패스트 패션으로 시작해 중저가 의류 납품을 거쳐 세계적 고가 럭셔리 브랜드의 하청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2020년 독일 국제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패션 수도로 불리는 밀라노의 무역업체 3만9242개 가운데 3012개가 중국인 이민 1세 소유다. 이민 2세 소유를 포함하면 전체의 13% 이상을 중국계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다만 프라토 차이나타운의 근로 조건은 비교적 열악한 편이다. 시카고 트리뷴은 프라토의 중국인 노동자가 하루 14시간 일하고 500유로 정도를 본국에 송금한다고 지적했다. 2013년에는 중국인이 근무하는 섬유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사실 이탈리아는 중국 중앙 당국이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눈여겨보고 있는 국가다. 이탈리아는 2019년 3월 23일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방 주요 7개국(G7: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중 첫 참여국이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이탈리아는 중국에 서방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중국은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 항구와 서북부 제노바 항구의 개발·투자에 참여할 길도 열었다. 트리에스테는 발칸반도와 중유럽·동유럽으로 이어지고, 제노바는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 각지로 연결되는 물류 거점이다. MOU가 실현되면 미래 경제가치가 200억 유로(약 26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를 겪어온 이탈리아로선 일대일로 참여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고, 중국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서방이 미국 중심으로 중국에 대응하면서 프로젝트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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