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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원시인 춤추고 공룡 화석이 꿈틀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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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코미디 영화는 어지간해선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핑크 팬더''열두 명의 웬수들'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든 숀 레비 감독의 말이다. 코미디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지상과제를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한참 벗어난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잘되면 다행이지만 조금만 지나치면 저질이라는 욕을 들어먹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충무로를 보면 유난히 조폭(조직 폭력배)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가 많다. 조폭은 웬만큼 황당한 짓거리를 해도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선입견이 충무로 제작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두사부일체''가문의 영광''조폭 마누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대개 흥행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평론가들에겐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소재가 조폭인지라 어린이들이 보고 즐기기엔 부적합하다는 한계도 뚜렷했다.

할리우드의 고민도 비슷하다. '나홀로 집에'시리즈처럼 가족이 함께 즐기는 코미디물을 많이 만들고 싶지만 소재가 부족했다. 그래서 레비 감독이 찾아낸 것이 어린이 그림책.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밤만 되면 전시물이 살아 움직인다는 이 이야기는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제목의 가족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져 다음달 말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물관이…'에서 매일 밤 전시물과 승강이를 벌이는 신참 야간 경비원 래리로 출연한 벤 스틸러(41)를 최근 미국 LA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미트 더 페어런츠' 등으로 국내 영화팬에게도 친숙한 그는 할리우드에선 짐 캐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코미디언으로 통한다.

"다양한 영화를 해봤지만 역시 제일 좋은 것은 가족 영화인 것 같아요. 부모가 되면 아이들에게 가서 보라고 권할 만한 영화를 찾게 되죠. 그게 내 영화라면 더 좋은 일이고요."

영화는 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역사 유물과 인물의 모형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뼈만 남은 공룡이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대고, 원시인들이 펄쩍펄쩍 춤을 추고, 손톱만 한 크기의 로마 병사들은 마구 화살을 쏘아 댄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테디 루스벨트의 동상이 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니는 장면도 재미있다. 특히 래리가 아프리카 원숭이와 다투다 서로 뺨을 때리는 장면은 언론 시사회에서 가장 큰 웃음을 자아냈다.

"원숭이가 어찌나 세게 때리던지…. 조련사들이 때리는 훈련만 열심히 시킨 것 같아요.(웃음) 반면 저는 한 대도 못 때렸어요. 동물보호 차원이기도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원숭이가 신경질을 부려 촬영에 지장을 줄 수 있거든요. 맞을 때는 진짜 맞고, 때릴 때는 인형에다 화풀이했죠."

영화에는 스틸러 외에도 코미디 연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는 테디 루스벨트 역할을 맡았고,'스타스키와 허치'에서 스틸러의 짝패였던 오웬 윌슨은 손톱만 한 크기의 카우보이로 나와 좌충우돌 말썽을 부린다. 음모를 꾸미는 선배 경비원 3인조로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딕 밴 다이크.미키 루니.빌 콥스가 열연했다.

"오웬과는 이번에도 죽이 잘 맞았죠. 로빈은 두 말이 필요없는 훌륭한 선배였고요. 무엇보다 우리 세대의 우상인 딕.미키.빌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무척 행복했어요."

스틸러는 코미디언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코미디언 제리 스틸러와 앤 메라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코미디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래서 밴 다이크는 그를 "본능적으로 타고난 코미디언"이라고 평했다.

스틸러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배우가 아닌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어려서부터 연기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았죠. 그러나 커서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결국 제 길을 가야 하니까요."

1985년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재 배우이자 감독 겸 제작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직접 출연한 '주랜더'와 짐 캐리가 주연한 '케이블 가이'등이 그가 연출한 작품이다.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되지만 감독은 신경 쓸 부분이 많아 너무 힘들더라고요. 감독으로서 아직 차기작은 정하지 않았어요.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 중이죠."

LA=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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