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26)|한운사 방송극 10여편 영화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 생명 다하도록』(신상옥 감독·60년) 『현해탄은 알고 있다』(김기영 감독·61년),『아낌없이 주련다』(유현목 감독·62년 ),『빨간 마후라』(신상옥 감독·64년) ,『남과 북』(김기덕 감독·65년)등 60년대 유명했던 작품들은 모두 한운사씨(1923년생)의 인기 방송극을 영화화 해 다시 히트시켰던 영화들이다. 그에게는 이것들 외에도 영화화된 방송극이 10여편 된다. 그는 우선 방송극을 쓰고, 그것을 시나리오로 써서 영화화되면 다시 그것을 소설로 쓰고는 한다.
그의 작품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멜러 드라마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정신과 사회상이 반영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 외교관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엄영달씨와 초창기 신문학 도입의 공로자 김규환씨를 주요 모델로 해 쓴『대 야망』같은 신문 연재소설은 그 당시로는 해외 로케가 요새같이 쉽지 않아서 영화화가 안됐다.
그에게는 럭키그룹의 구인회회장 전기를 비롯하여 전기가 4, 5권은 된다.
한국일보 창설자 장기영씨의 전기는 지금 13년째 주물럭거리고 있다. 이러한 전기류로 말하자면 신상옥·최은희 부부의『김정일 왕국』상·하권 중 상권은 한운사씨가 썼다.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북에서 탈출하여 아직 미국에 있을 때 신상옥 씨로부터 서울의 한운사 씨에게 전화가 왔다.
한운사씨는 그의 요청으로 미국에가 2, 3개월 머무르면서 그들의 수기를 썼다. 한운사 씨의 생각으로는 한국의 인텔리로서 남과 북을 다 겪은 사람은 그들뿐이니 그들이 경험한 바를 한국 사회, 또는 북한 사회에 알려준다는 뜻에서 책제목을『중간보고』로 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하권은 모 일간지 기자가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암흑으로부터의 메아리』라는 제목으로 일본말로 번역돼 제법 팔렸다.
번역자는 연세대 외국어 학당에서 공부하고 간 그곳 고교 교사인데, 지금 한운사씨의『현해탄은 알고있다』를 번역하고 있다.
일본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미산수지)씨가 쓴『족보』는 당초 단막극으로 TV드라마 화해 내보냈더니 그 후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78년)했다. 당시 스노베 일본 대사는 이것을 보고 한운사 씨에게 전화해 『일본이 그런 나쁜 짓을 했었는지 정말 몰랐었다』며 사과하고 그후부터 친해졌다.
원작자 가지야마 씨는 해방 전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돌아가 르포라이터로 출발, 추리 작가가 됐다. 그는 옛날 일본 시대극『궁본무장』에서 여주인공 역을 했던 궁성천하자를 비롯한 많은 일본 지식인·연예인들과 함께 와 워커힐 카지노에서 도박에 열중하는 모습도 보였었다. 얼마 전 홍콩에서 위 파열로 죽었다.
『족보』는 일본 NHK-TV에서 나간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되는데 그 후 가지야마 작품의 문학성이 재평가된다. 비슷한 작품으로는『이조잔영』이라는 것이 있다.
한운사 씨는 방송극『이 생명 다하도록』을 발표한 얼마 후 이상한 운명의 장난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잡혀가 반년 이상을 고생하고 나온다. 무죄로 나오긴 했으나 정신적·육체적으로 허탈감에 빠져 있었고 사람들이 보는 눈초리도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이때 성우 출신의 연출가 민구씨가 기독교 방송 KY에 드라마를 쓰라고 한다. 이것이『그 이름을 잊으리』(노비감독·60년)로그의 방송극이 최초로 영화화되는 경우다.
『남과 북』은 신정 프로로 만들겠다고 빨리 쓰라고 해 시나리오 3백장을 잠 안자고 48시간만에 썼다. 원고를 받아 그 자리에서 읽어 본 김기덕 감독은『글자 한자 고칠 것 없군요』하고 가져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빨간 마후라』를 촬영할 때 비행장 로케 현장엘 갔더니 스태프 일동이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신상옥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더니 카메라를 비행기 동체에 부착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작업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로서는 그런 촬영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대단한 효과를 냈다.
한운사씨는 현재 KBS 이사직을 갖고 있다. 또 월간 골프 잡지『톱 골프』를 87년부터 직접 내고 있다. 요새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디자이너 도리안 한은 그의 둘째아들이다. 한운사 씨는 자신이 이미 귀적에 든 사람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사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박영(영화 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