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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평화포럼 美·中·日 전문가 좌담] "6자회담서 북핵 해결 가능성 半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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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이 6자회담 개최를 원칙적으로 수용한 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핵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인가, 아니면 새로운 핵 위기를 여는 전주곡인가.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제주에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와 메이자오룽(梅兆榮)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 아카시 야스오(明石康)전 유엔 사무차장을 한자리에 모아 최근 새 국면에 접어든 6자회담의 전망과 문제점을 듣는 좌담회를 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열린 제2차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포럼은 제주도가 주최했으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제주발전연구원이 공동 주관했다. 좌담은 문정인(文正仁)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문정인=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평양을 방문한 우방궈(吳邦國)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격)을 만나 6자회담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북한이 왜 6자회담을 수용했다고 보십니까.

▶그레그='체면' 문제와 함께 워싱턴의 기류가 바뀐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그동안 북.미 양자 회담을, 미국은 다자회담을 고집해 왔어요. 그런데 중국의 중재로 '다자회담 내 북.미 직접 접촉'이라는 절충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북한을 둘러싼 워싱턴 강온파 간의 힘겨루기에서 대북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힘을 얻은 것도 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文=중국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해 올 봄에 대북 석유 송유관 꼭지를 사흘간 잠갔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梅=일고의 가치도 없는 루머에 불과해요. 중국은 북한을 압박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동안 워싱턴과 평양,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어요. 그 결과가 6자회담입니다.

▶아카시=중국 외교당국이 어려운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6자회담만 하더라도 각국 회담 대표 36명에 통역이 24명이나 참가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회의입니다.

▶文=북한이 6자회담에 동의했지만 워싱턴과 평양 간에는 아직 '언어의 갭'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북한은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핵 문제와 불가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선(先) 핵 폐기 후(後) 안전보장을 얘기하고 있어요. 또 북한은 불가침 보장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문서를 통한 '다자 간 안전보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양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으로 보십니까.

▶梅=북한은 당초 지금보다 훨씬 강경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지만 협상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그레그=동감입니다. 난관이 많겠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세부 사항에 대해 모든 대답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6자회담이라는 공을 굴려가는 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카시=핵시설 사찰이 골치 아픈 문제로 떠오를 공산이 큽니다. 나는 1991년 1차 이라크전 직후 유엔 사찰단 일원으로 바그다드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찰한 적이 있어요. 조사 결과 사담 후세인은 유엔이 과거 사찰을 마친 한 시설물 지하에 또다시 비밀시설을 짓고 핵개발을 하고 있더군요. '한 번 본 곳은 다시 안 본다'는 맹점을 노린 것이지요. 그 후 유엔은 사찰을 더 강화했어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검증 기술은 개선됐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죠. 북한의 경우에도 애를 먹을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정치.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文=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모델은 핵무기 폐기를 조건으로 미국과 영국.러시아가 안전을 보장한 것이지요. 미국이 우크라이나 해법을 북한에 적용할 경우 중국.러시아.일본도 대북 안전보장을 해 줄 것으로 보십니까.

▶그레그=미 국무부가 우크라이나 모델을 검토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봐요. 우크라이나 모델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미첼 라이스 박사인데 그는 6개월 전 국무부 외교정책실장으로 임명됐어요. 나는 지난해 11월 평양을 방문했는데 북한 사람들은 러시아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더군요. 러시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또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 비용을 댈 수도 있어요.

▶梅= 중국 입장에선 말하기 곤란한 문제예요.

▶아카시=일본이 항상 미국 편을 든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최근 일본은 유엔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결의안을 놓고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했어요.

▶文=따지고 보면 미국의 대북 다자 안전보장이라는 것도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과연 북한이 이 종이 한 장을 받고 40년간 추진해온 핵개발을 포기할까요.

▶梅=1차로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누구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 (지금까지 의심받아 온) 두세 개의 원폭 외에 두세 개가 더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확증은 없어요. 북한이 실제로 조잡한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상용 언사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레그=북한은 미국의 정치적 의지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어요. 만일 북한이 '미국이 진지한 태도로 회담에 임한다'고 확신한다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어요. 언젠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부장을 만났더니 나보고 '당신과 내가 대통령이라면 핵 문제를 6개월 안에 풀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文=93~94년 미국과 북한은 16개월 이상을 끌면서 회담한 결과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2차 핵 문제 해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까요.

▶梅=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수뇌부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레그=10월 초 뉴욕에서 북한 관리와 점심을 했어요. 그는 대화 중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까요"라고 물어보더군요. 북한이 핵 문제 해법 시간표를 짜면서 미국 대선 결과를 염두에 두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에요. 다만 평양이 명심할 것은 2005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긴다고 해도 미국이 과거 클린턴식 대북정책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점이에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도 워싱턴에서 '대북 협상 불가'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대목이에요.

▶文=끝으로 저널리스틱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북한 핵 문제가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梅=50%가 조금 넘지 않을까요.

▶그레그=나는 45% 정도로 봐요.

▶아카시=나는 도박에는 서툰 편이지만 55% 정도에 걸겠어요.

▶文=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사회=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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