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행(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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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인과 러시아인의 첫 해후는 1246년 당시의 몽골 수도 카라코룸에서 이루어졌다. 몽골의 제3대 군주 정종의 즉위식에 참석한 「솔롱게스의 왕자」와 러시아 수달공국의 대공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솔롱게스란 몽골어로 고려 또는 고려인이란 뜻인데,당시 몽골에 볼모로 가 있던 종실의 왕준과 왕전 형제가 아마 그 즉위식에 초청을 받았던 모양이다.
서양의 기록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 기록에 등장하는 러시아와의 첫 해후는 싸움터에서였다. 17세기 우랄산맥을 넘어 동진하는 러시아 세력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청이 맞부닥친 1652년의 흑룡강 전투에서 우리는 청국의 원병으로 참전한 게 최초의 접촉이었다.
1884년 한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나서도 그 접촉무대는 대부분 한반도 주변에 국한되었다.
우리 정부의 고관이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고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사람은 민영환 공사다. 그는 1896년 3월 고종의 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당시 러시아정부는 황제의 대관식을 5월6일 수도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성대하게 치르기로 하고 세계 20여 개 국에 초청장을 냈는데 그중에는 조선,청국,일본의 동양 3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영환은 학부협변 윤치호를 수석 수행원으로 하고 2등 참사관 김득련,3등 참사관 김도일 등 수행원을 거느리고 4월1일 러시아 군함편으로 인천을 출발한다.
일행은 상해를 거쳐 일본의 장기에 들렀다가 동경에서 1박한 다음 태평양을 건너 4월28일에 캐나다의 밴쿠버에 도착한다.
거기서 다시 기차 편으로 북미 대륙을 횡단,5월6일 뉴욕에 도착,3일간 머무르는데 그곳에서 그는 미국의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상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16일에 런던에 도착,1박한 다음 네델란드,독일,폴란드를 거쳐 비로소 러시아 땅을 밟는다. 그리고 러시아 관리의 영접을 받으며 20일에야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여장을 푼 것이다. 서울 떠난 지 꼭 50일만이다.
그 멀고 멀었던 모스크바를 노 대통령이 내달 중순께 방문한다고 한다. 우리 태극마크를 단 비행기로 하루면 도착하는 거리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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