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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갈대밭 황금빛 물결에 만추 정취 흠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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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황혼 무렵, 철새가 나는 갈대 숲 사이로 연인들이 거니는 모습은 한 폭의 살아있는 수채화예요.』지난 주말 낙동강하구 을숙도에서 만난 한 백발의 화가는 이젤을 펴다가 석양에 물든 을숙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녕 황금빛으로 채색된 갈대발과 이제 막 찾아든 겨울철새들, 붉게 물든 석양 노을은 점점 이 조화를 이뤄 주말에 몰러온 수만 인파들을 족히 환상과 탄성의 도가니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최근 서리가 내리고 단풍절정기를 넘기면서 이처럼 새하얀 억새풀과 환상적인 갈대밭 여행 코스가 수많은 여행객들과 사진작가·화가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보물처럼 터지는 갈대꽃과 자욱한 억새풀숲이 제철을 맞아 강렬하고 특이한 정취를 풍기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 80년대 초부터 을숙도의 철새도래지 탐방으로 시작 된 늦가을 갈대밭코스는 인기를 독차지, 이미 정규 주말여행 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갈대와 억새는 보통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 이듬해 봄까지가 시즌이지만 아무래도 10월과 1l월에 가장 절정을 이룬다.
현재 영남 알프스일대(밀양군내 천황산을 비롯한 7개 산)와 제주도 한라산허리는 하얀 억새가, 을숙도 주변엔 황금색 갈대가 각각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갈대와 억새는 흔히 혼동하기 쉬운데 가장 손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연못이나 개울·바닷가 등지에서 자라는 것은 대개 갈대이며 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억새로 생각하면 된다.
을숙도는 우선 세계적인 철새도 래지여서 설핏 철새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 갈대가 수로를 따라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다.
지난 87년 말 완공된 낙동강 하구둑 공사로 을숙도가 아예 없어지지 않았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수자원공사 하구둑 관리사무소 주인배 공무부장(46)은『물에 잠긴 곳은 사실상 전혀 없다』면서 『철새들의 보금자리는 개펄이 대부분이고 매립으로 면적은 오히려 1백만 평쯤 늘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1백79호로 지정된 철새도래지 낙동강 하구 백로·기러기·청둥오리·도요새를 비롯해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재두루미·먹황새 등 수십만 마리나 되는 철새들의 성역인 을숙도는 철새의 군무와 묘기 속에 하루해가 지는 멋진 추억의 장소다.
을숙도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갈대밭이다. 사람 키를 넘는 울창한 갈대들이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그 갈대사이로 조금만 들어가도 뵈지 않을 정도다. 갈대 숲 사이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은 이곳 을숙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서정이요 낭만이다.
이곳이 새들의 낙원을 이루고있는 까닭은 기후와 지형이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 우선 동북 시베리아 지방에서 한반도를 따라 남하하는 철새들에 육로 최남단 쉼터인데다 열대지방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철새들의 첫 길목이 되고 있다.
또 기후가 연중 온화하여 한겨울에도 강이 얼지 않으며 낙동강 하구일대의 을숙도 장자암·신다도 등의 삼각주와 강변 모래톱, 개펄에 폭넓게 갈대 숲이 우거져있어 철새들의 안식처로서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므로 부유생물이 풍부하고, 어류·패류·갑각류·수서 곤충들이 갈 번식하여 철새들의 먹이 또한 풍족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이곳에 찾아드는 철새는 크게 여름새·겨울새·나그네 새·텃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텃새는 이곳에 사철 서식하는 새이고 여름새는 뉴질랜드·필리핀 등지에서 5월초부터 날아와 여름을 지낸 뒤 8월 중순이면 다시 날아가는 새다.
겨울새는 시베리아 지방과 캄차카반도 등에서 살다가 결빙기가 되면 10월초부터 이곳에 날아와 이듬해 2월말까지 산다. 또 나그네새들은 봄 철새와 가을철새가 있는데 아열대지방에서 대륙을 오가다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고향을 찾아간다.
낙동강 하구는 하구전역에 걸쳐 크고 작은 모래톱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따라서 썰물 때면 바닷물이 빠져 모래톱이 드러나고 이 모래밭 위에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모여서 장관을 이룬다.
기다란 주둥이를 바닷물 깊숙히 집어넣고 먹이를 잡던 백조 떼는 고즈너기 바다위에 떠 있다가 사람이나 배가 다가가면 바람을 안고 퍼득이며 날아오른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떼의 모습은 어찌 보면 날리는 낙엽 같기도 하고 떨어지는 꽃잎 같기도 하다. 갈매기들은 유유히 날다가 잽싸게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한다.
잠수의 명수인 뿔농병아리는 40∼50cm나 깊은 물 속까지 파고들어 물고기를 잡아채 배를 채우고는 고개를 흔들어대 배꼽을 쥐게 한다.
을숙도의 행정구역은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서울에서 이곳에 오려면 일단 부산에 도착해 시청 앞이나 중심가 남포·충무동에서 58-①∼②번을 타면 된다. 을숙도는 섬 전역에 걸쳐 출입이 통제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개펄이 많아 비가 올 경우엔 사전준비 없이 갈대 숲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섬 주변을 일주하려면 사하구청 문화공보계(29-6041)에 문의, 협조를 얻으면 6∼7인승 나룻배를 시간당 1만원안팎에 빌릴 수 있다.
하구둑 양쪽의 하단과 명지동 선착장 부근에는 갈밭 집·철새 집 등 이름마저 시정이 솟는 생선횟집들이 눈에 띈다.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이런 집에서 각종 매운탕과 생선회를 즐길 수 있어 을숙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쉴 곳과 낭만을 더해준다. <글 배유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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