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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국 정상회담 19일 파리서 개막/새 질서 찾는 유럽: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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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서간 수십년 적대 청산/꾸준한 재래식무기 협상 열매/인위적 장벽 허물고 평화정착
오는 19일부터 3일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34개국 정상회담은 냉전종식ㆍ독일통일ㆍ동구민주화 등과 관련,유럽의 구 질서를 청산하고 신 질서를 구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75년 헬싱키 CSCE 정상회의 이래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로서 마치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의 질서개편을 위한 1814년 빈회의를 연상시키는 이번 회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파리 CSCE의 역사적 의의와 전망을 2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지난해 12월 미소 정상은 지중해 몰타섬에서 역사적 회담을 갖고 제2차대전 이후 약 반세기 동안 계속된 동서간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동유럽의 민주화혁명,소련의 정치ㆍ사회적 변화,그리고 독일통일은 전후 유럽의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엄청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구 질서는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 질서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CSCE 파리 회의는 유럽의 신 질서 구축에 하나의 획기적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70년대초 미소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미소는 동서간 대립이 첨예하게 유지되고 있는 유럽에서 동서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72년 11월부터 35개국 대표가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예비회담을 시작,75년 8월 35개국 정상들이 최종합의 문서인 헬싱키 선언을 채택했다.
헬싱키선언의 내용은 크게 유럽의 안전보장,경제 및 기술협력,인권의 3개분야로 나뉘어 흔히 「세개의 바스킷」이라고 불리며,조약 참가국들의 의무 이행여부를 확인하는 검토회의를 정기적으로 열도록 돼있어 CSCE는 그동안 베오그라드(77∼78년),마드리드(80∼83년),빈(86∼89년)에서 세차례의 검토회의를 연 바 있다.
이번 회의는 형식상 CSCE의 제4차 검토회의로 원래 오는 92년 헬싱키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어디까지나 CSCE의 임시 정상회의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번 회의가 역사적 회의로 평가되는 이유는 현재 유럽이 처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지금 유럽에서 일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어떤 형태로든 정리,새로운 질서를 찾지 못할 경우 유럽은 심각한 불안정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이번 CSCE 임시 정상회의 개최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다. 현재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소련을 초조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며,고르바초프는 오는 92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다.
소련이 주도해온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동유럽민주화 도미노현상으로 사실상 해체상태이며,동유럽국가들은 어제까지의 동맹관계에서 지금은 상호 불신과 반목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또다른 중대변화는 독일통일이다. 지난달 3일 독일은 전후 40년의 분단역사를 청산,하나가 됐다. 유럽의 한 가운데 막강한 경제력의 독일이 다시 등장한 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변화 속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초강대국 소련이 느끼는 불안은 크다. 소련은 초강대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면서 나토의 영향력을 배제한 전유럽 차원의 새로운 안보체제 확립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측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특히 미국은 나토의 기능약화를 전제로 한 유럽의 안보체제 구상에 대해 부정적이다. 나토의 기능약화는 곧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미국이 이번 회의에 응한 것은 유럽 재래식무기 감축협상(CFE)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서유럽국가들은 현재 소련ㆍ동유럽에서 일고 있는 불안정이 유럽 전체의 불안정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어떤 형태로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서방측에서 걱정하는 것은 특히 소련의 불안정한 국내상황이다. 경제난ㆍ민족분규ㆍ연방과 공화국간 대립은 소련내에서 분쟁발발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으며,이것이 유럽 전체의 혼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서방측으로선 기존의 안전보장 구조를 선뜻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군사행동 자제,경제협력,인권 등 헬싱키조약의 기본 사항을 재확인하는 한편 CSCE의 기능 강화를 위한 상설기구를 설치하는 선에서 그칠 것으로 보는 회의적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이번 CSCE 파리회의는 CFEㆍ나토­바르샤바조약기구간 불가침선언ㆍCSCE의 기능강화 등 주요 협정 및 조약을 체결,그동안 유럽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았던 장벽을 허물어 뜨리는 한편 유럽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회의는 또 동서 냉전 종식의 두 주역인 부시ㆍ고르바초프 양인에겐 개인적 영광을,그리고 유럽국가들엔 15년전 헬싱키에서 약속한 동서화해를 재확인하는 역사적 무대가 될 것이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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